‘1차 대전도 우발적 발발’ 내용
남북 의도치 않은 충돌 막기위해
군사 연락채널 복원 등 요구
이달 5~9일 북한을 다녀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북측에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탐색한 역사서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측에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남북 군사 연락채널 복원도 요구했다.
이런 사실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가 20일(현지시간) 게재한 ‘북한은 전쟁을 막으려는 유엔 특사에게 무엇을 말했나’란 제목의 글을 통해 공개됐다. 이그나티우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펠트먼 사무차장이 북측과 15시간 30분 동안 대화하면서 3대 요구사항을 밝혔다고 썼다. 그는 우선 2009년 단절된 남북 간 군 연락채널을 되살려 우발적 전쟁 가능성을 줄이자고 했다. 이어 북한이 지난달 29일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어도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핵화 결의도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펠트먼 사무차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건넸다는 도서, 몽유병자들이다. 영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2014년 펴낸 이 책에는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으로 향했나’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1차대전이 발발한 이유는 특정 의도를 가진 광신도 집단 때문만이 아니고 결과를 예견치 못한 이들이 몽유병 환자처럼 달려들어 비극을 자초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독일과 참전국 모두가 전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이그나티우스는 “의도치 않은 충돌을 막자는 메시지를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내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친서를 지니고 방북했는데, 편지에는 “핵 억지력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북한의 시도가 그들이 회피하고자 하는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자들은 그에게 미국의 의사결정과 관련해 질문만 많이 던졌을 뿐, 미국이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어떻게 바꾸길 바라는지,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의 민감한 현안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그나티우스는 다만 펠트먼 사무차장이 북측에 유엔 안보리 참석을 요구한 이후 15일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안보리 장관급 회의에 나온 것은 고무적 신호라고 전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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