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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한국출판문화상] "지금 겪는 그 고통, 당신 탓이 아닙니다"

입력
2017.12.21 14:1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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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수상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2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58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수상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2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한국 사회를 살면서 개인이 겪는 고통들이 당신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겪는 고통은 사회적 원인을 갖고 있고, 그 해결책도 개인이 아닌 사회가 찾아야 한다고요.”

사회학자의 말이 아니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의대를 졸업한 보건학자다. 다만 질병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고 사회 구조를 건강하게 바꿀 방법을 찾는 ‘사회역학’을 연구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발행)은 김 교수가 처음 쓴 단행본으로 한국일보뿐만 아니라 언론과 출판사에서 꼽은 올해 화제작이다. 사람의 몸이 병드는 이유는 처해있는 환경에도 있다는, 이 당연한 사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 그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의 연구와 해외의 연구 결과를 풀어 쓴 책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김 교수는 대다수 의대 졸업자가 걷는 길을 가지 않았다. 사회역학은 정부와 기업을 비롯한 공동체에 공동의 책임을 묻는 학문인 탓에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비인기 분야다. 그는 이 선택에 자신의 성장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공단들이 밀집한 서울 신도림동에서 살았다. 흰 옷을 빨아 널면 검은 먼지가 묻을 정도였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용접 중인 노동자들과 마주쳤다. 대학생 때는 방학이면 공장의 작업환경을 체크하는 활동을 했다. 자신의 이웃이기도 한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학자의 언어로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미국 IBM 노동자들의 직업병 소송에서 거대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 편에 선 리처드 클랩 보스턴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를 “골리앗에 맞서는 일”이라면서도 “어떤 학자는 그(노동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 역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국내 성소수자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자신을 체제에 맞서는 사람으로 비유하는 건 부담스럽고 미안한 일이다. “저는 한국에서 완전한 기득권이에요. 신체 건강한 이성애자 남성이고, 학벌사회에서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죠. 그저 살면서 중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보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온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제게는 ‘성실한 학자’라는 말이 가장 좋은 칭찬이에요.”

거의 모든 시간을 제자들의 교육과 연구에 쓰는 김 교수에게 글쓰기는 스스로를 채우는 활동이다. 이번 책을 기반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심사위원 모두가 궁금해하던 저자의 새 책은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김 교수는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에는 편향성이 존재한다. 인간의 몸과 건강, 질병에 대한 지식이 낳은 성과도 있지만, 동시에 편향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그늘도 있다. ‘지식의 그늘’을 테마로 하려 한다”고 귀띔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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