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승인율 98%
아파트 경비원ㆍ운전기사 등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규정 많아
업무 내용 고용부 승인 필요
휴게시설 면적 기준 없는 등
승인 기준 허술하고 검증 미비
사후감독 부실 적발 쉽지 않아
2014년부터 2년 가량 국내 한 유명 통신사에서 임원 운전기사로 일한 A씨는 오전 5시30분에 출근해 하루 평균 17~20시간 가량 ‘근무’와 ‘대기’를 반복했다. 임원 출ㆍ퇴근과 외출ㆍ심부름 운전 등을 비롯해 대기시간에는 주유, 청소, 배차 업무 등을 수행했고 회식이 있는 날에는 인근에서 임원의 호출을 기다렸다. 그렇게 받은 야간근로 수당은 일한 시간과 무관하게 2만3,000원뿐이었다. A씨는 “대기시간에도 임원의 호출에 따라 움직이는 지휘 체계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근로시간에 해당된다고 생각해 연장근로 수당을 받고자 지방 노동청에 체불임금 신고를 했지만, 감시ㆍ단속적 근로자란 이유로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과 수위(감시), 운전기사나 기계수리공(단속) 등 간헐적 업무에 종사하는 ‘감시(監視)ㆍ단속적(斷續的) 근로자’들이 정부의 방치 속에 열악한 근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무 시간이 불규칙한 근로자들에 대한 사용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감시ㆍ단속적 근로자’는 야간근로(오후10시~오전6시) 수당 외 근로기준법상 휴일ㆍ휴게ㆍ연장근로에 관한 규정을 적용 받지 않는다. 휴게와 근로를 오가는 모호한 근무 속에 제대로 된 휴식 없이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이들을 고용하려는 사용자는 업무 내용을 증명하는 서류로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게 돼 있다.
문제는 승인 과정에서의 검증이 미비할 뿐 아니라 사후관리가 부족해 근로시간에 대한 시비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르면 감시적 근로자 승인기준은 ▦심신의 피로도가 적고 ▦감시적 업무를 본 업무로 하며 ▦1일 근로시간 12시간 이내 또는 휴게시간 8시간이 확보된 24시간 교대제 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단속적 근로자는 ▦대기시간이 길고 ▦실 근로시간이 대기시간의 절반 이하이면서 8시간 이내인 경우 ▦휴게시설 확보 등을 조건으로 한다. 이 같은 기준은 근로시간과 구분되는 휴게시간에는 사용자의 지휘ㆍ감독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업무 내용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승인은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다. 18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5년간 전국 지방노동관청에 신청된 감시ㆍ단속적 근로자 21만9,602명 중 무려 97.7%(21만4,565명)가 승인을 받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근로감독관 인원이 부족해 현장 실사를 가도 전체 대상자와 면담하며 근무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라며 “서류 검토로 심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승인 기준 자체도 허술하다. 단속적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휴게시설의 경우 면적이나 필수 시설 등에 대한 기준이 없어 근로감독관이 임의로 판단하며, 감시적 근로자는 휴게시설 유무가 아예 승인 기준에 없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2013년부터 4년간 24시간 격일제 경비원으로 근무한 B씨는 “휴게시간 동안 반평 남짓한 경비실 의자에 앉아서 졸거나, 곰팡이 찬 지하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쉬었다”라며 “아파트 측에 휴게시설을 요구하니 보여주기식으로 관리사무소 운동시설에 야간에만 매트리스를 설치해 이를 이용하는 경비원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사후감독도 전무해 고용 뒤 발생하는 악의적인 경영방식도 적발이 쉽지 않다. 근로자가 직접 법적 절차를 밟아야 체불된 임금을 받거나 사측의 감시ㆍ단속적 근로자 승인 취소를 얻어낼 수 있는 구조다. 지난 13일 3년여의 소송 끝에 대법원이 서울의 한 경비원 5명이 야간 휴게시간(자정부터 오전4시)에 불을 켠 채 사실상 가수면 상태에서 순찰 업무를 한 점에 대해 휴게시간 전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 그 중 하나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