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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방탄은 어떻게 넘사벽이 됐을까?

입력
2017.11.29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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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공감과 위로에 있다”

발랄한 사랑 중심 가사 탈피

노력-인생 등 단어 반복해

위태로운 청춘의 오늘을 대변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27일 미국에서 방송된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리더인 RM(본명 김남준)은 이 방송에서 “한국과 미국이 언어는 다르지만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며 “우리 가사에 많이 공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27일 미국에서 방송된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리더인 RM(본명 김남준)은 이 방송에서 “한국과 미국이 언어는 다르지만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며 “우리 가사에 많이 공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음악 좀 찾아 듣는다는 직장인 강기욱(41)씨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K팝 인베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기라는 소식이 낯설다. 강씨는 “방탄소년단이 대세란 건 알았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주목 받을 줄은 몰랐다”며 얼떨떨해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 톱10(7위)에 들었다고 하나 정작 주변에서 곡의 열풍을 체감한 적이 없어서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자녀를 두지 않은 30대 후반 이상 연령대에게는 안팎으로 떠들썩한 방탄소년단의 화제가 ‘다른 세상’ 일이다. 방탄소년단이 ‘텔미’의 원더걸스나 ‘거짓말’의 빅뱅처럼 전국을 들썩이게 할 히트곡을 아직 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은 미국에서 어떻게 열풍을 일으킨 것일까. 세련된 힙합 음악과 팬과의 적극적인 소통만을 인기 이유로 보기엔 충분치 않다. 빅뱅도 힙합을 기반으로 한 댄스 음악을 내세웠고, SM은 북유럽 작곡가까지 영입해 아이돌 K팝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다른 K팝 아이돌과 비교해 곡의 완성도가 유독 뛰어나 방탄소년단이 독보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팬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 빅뱅, 트와이스 노랫말 분석

※세 그룹이 낸 모든 앨범 수록곡 가사 반복 빈도 분석

‘청춘의 대변인’ 방탄소년단… 노랫말 데이터 분석해보니

방탄소년단의 개성은 노랫말에 있다. 이들의 음악엔 ‘88만원 세대’의 현실이 가득하다. 방탄소년단은 청춘을 ‘6포세대’(‘쩔어’)로 만들고, ‘내 일주일(을) 월화수목 금금금금’(‘고민 보다 고(Go)’)으로 저당 잡은 세상을 일갈한다. K팝 아이돌 그룹엔 찾기 어려운 사회 비판 서사다.

VIP(빅뱅의 팬클럽), 원스(트와이스의 팬클럽) 등의 팬덤을 지닌 아이돌그룹이 폭발력을 얻기 위해선 세력의 확장이 중요하다. 스타와 10~20대 팬 사이 공통된 화두가 있을 때 팬덤은 강력해진다. 방탄소년단은 이 지점을 공략했다. 그룹은 ‘청춘의 대변인’ 전략으로 팬덤을 넓혔다. “‘교실이데아’ 등으로 서태지와아이들이 팬덤의 밀도를 높인 것과 비슷”(김상화 음악평론가)하다.

노랫말을 보면 전략이 확연히 드러난다. 방탄소년단의 가사엔 ‘노력’(38회)이나 ‘인생’(17회) 같은 단어가 눈에 띄게 반복된다. ‘아 노력 노력 타령 좀 그만둬’(‘뱁새’)라며 기성세대를 비판하거나,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 봐’(‘노 모어 드림’)라며 무기력한 젊은이를 각성시키는 대목에서다. 인생이 노래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트와이스와, 노력이 세 번 쓰인 빅뱅과 비교하면 방탄소년단의 청춘 서사는 도드라진다. 본지가 세 그룹의 노랫말을 모아 빅데이터 프로그램R로 텍스트 빈도 분석을 해 얻은 결과다.

부조리한 현실 부정으로 가득… 빅뱅, 트와이스와 다른 길

방탄소년단의 곡엔 ‘노(No)’, ‘롱(Wrong)’ 등 부정적인 단어의 등장(166회)이 특히 많았다. 교육부 한 공무원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을 풍자한 ‘우린 다 개 돼지’(‘엠 아이 롱?’)처럼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할 때 쓰였다. ‘재미’(35회)와 ‘행복’(29회)이 화두였던 빅뱅과 ‘스위트’(Sweetㆍ12회)와 ‘치어’(Cheerㆍ11회) 등이 반복됐던 트와이스의 밝은 노랫말과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학교 3부작’과 ‘청춘 3부작’으로 낸 시리즈 앨범은 방탄소년단이 국경을 넘어 청춘의 아이돌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사회적 인식을 담은 아티스트적 접근이 성공 비결”(빌보드)이란 평가처럼 청춘의 언어로 굳건해진 방탄소년단과 팬덤의 연대는 차트 성적으로 나타났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인 ‘아미(A.R.M.Y)’가 미국 라디오 선곡 신청으로 방송 횟수를 늘린 덕분에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K팝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아미는 ‘천만대군’이다. 팀의 트위터 팔로어는 약 1,048만명(28일 기준)에 이른다. 국내 계정 중 가장 많고, 빅뱅(142만 명)과 트와이스(169만 명)보다 7배나 많다. 트위터코리아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방탄소년단의 SNS 계정 해외 팔로어 비율은 약 88%다.

◆내가 ‘아미’가 된 이유

SNS 해외 팔로어 88%, 비결은 ‘극강 군무’

방탄소년단은 언어의 장벽을 ‘극강 군무’로 뛰어 넘었다. 7명의 춤은 빈틈 없는 ‘칼군무’로 유명하다. ‘쩔어’와 ‘피 땀 눈물’ 등에서 보여준 춤의 역동성은 압도적이다. “개별 파트에선 애드리브로 저마다의 끼를 보여주면서 군무할 때 응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게 큰 장점”(정진석 안무단체 나나스쿨 단장)이다.

해외에서 군무는 K팝의 개성으로 소비된다. 영미권에서 10~20대로 구성된 댄스그룹은 극히 드물다. SM 소속 아이돌 그룹 샤이니와 엑소 등이 최근 곡들에서 격정적인 칼군무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였고, 방탄소년단처럼 군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팀도 드물어 방탄소년단에 해외 ‘아미’들은 더 열광한다. ‘방탄소년단 안무를 본 해외 팬 반응’이란 동영상이 온라인에 쏟아지는 이유다.

아이돌 문화를 연구해 온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장은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덤은 K팝의 오타쿠(마니아 이상으로 빠져든 사람) 시장을 넘어섰다”며 “아이돌이 능동적으로 음악 세계를 펼쳐 춤과 노래만으로 거론됐던 K팝의 영역을 넓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박혜인 인턴기자(중앙대 정치국제학 4), 자료분석=박서영

미국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한 그룹 방탄소년단 모습. NBC 방송 캡처
미국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한 그룹 방탄소년단 모습. N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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