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ㆍ고객에 잘못 보이면
무분별한 부당해고 비일비재
당일 해고 통보받는 일도 예사
“문제제기 않겠다” 각서 요구도
은행경비연대 발족했지만
용역업체, 가입자 색출 불이익
국책은행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던 A씨는 지난 8월 진상 고객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은행 문이 열리지도 않은 오전 이른 시간에 찾아 온 고객이 다짜고짜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 “업무 준비가 안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진정시켰지만, “내 업무가 바쁜데 왜 못 들어가냐”는 고함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문제는 열흘 뒤 터졌다. 그날 A씨에게 사과까지 받고 돌아갔던 그 고객이 은행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A씨를 고용하고 있던 용역업체는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는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하더니 이내 “그만두라”고 나왔다. “동전 세기, 주차도장 찍기, 직원들 떡볶이 배달 등 갖가지 잡무에 시달린 것도 억울한데 고객이 억지 민원 하나 냈다고 해고까지 하겠다고 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여기저기 하소연했지만, 결국 지난달 사직서를 내야 했다.
은행 경비원들이 은행과 고객, 용역업체로부터 갑(甲)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 무분별한 부당해고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경비 업무 외 잡무를 맡는 것은 기본이고, 고객이나 직원에게 잘못 보여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하소연이다. 참다 못한 은행 경비원들이 ‘은행경비연대’를 발족해 힘을 모아도 보지만 처지에는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멀쩡히 출근한 당일 해고통보를 받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지난달 해고된 은행 경비원 B씨는 “금요일에 출근하니까 고객 응대가 미흡하다면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당해고라면서 항의라도 하면, 각서를 요구한다. “실업수당이라도 받고 싶으면 문제제기를 않겠다는 내용에 서명하라”는 식이다. 한 해고 경비원은 “노동부 진정, 금융감독원 민원, 청와대 국민신고 등 일절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각서”라고 말했다. 해고를 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이를 예고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한 달 월급을 주도록 규정(해고예고수당 지급)한 법도 무시되기 일쑤다. B씨는 “실직자가 돼 당장 생활비가 급하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각서에 서명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라 제대로 반발하기 어렵다. 은행에서 용역업체에 ‘문제가 생긴 직원을 잘라라’고 하면 업체는 계속 용역을 맡으려면 군소리 없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은행 경비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부당해고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참다 못한 은행 경비원 150여명은 7월 ‘은행경비연대’를 발족해 ‘노동권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용역업체들이 “경비연대 가입자에게 마이너스 점수를 주겠다”며 색출에 나서는 대응을 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경비원들에게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도록 해 연락처와 위치정보 등을 수집하기도 한다. 경비연대 관계자는 “업체에 노출돼 불이익을 당할까 경비원들이 가입하는 것조차 꺼려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경비원들의 권리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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