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바람 속에
밥 딜런 글, 존 무스 그림ㆍ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36쪽ㆍ1만2,800원
노벨문학상 발표 덕분에 서점가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올해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라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해의 이변 덕분에 상당 기간 서구 중심적이고 지독히도 정치 편향적인 케케묵은 연례행사로 치부되었던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크게 환기된 덕분이라 본다. 1930년대를 압도했던 영국의 천재 시인 딜런 토머스도 못 받았던 상이 싱어송라이터에게 주어진 사실, 딜런을 흠모해 밥 딜런으로 이름을 바꾼 그 수상자 로버트 앨런 지머맨은 정작 선약을 핑계로 12월의 시상식에 불참하는 바람에 한림원의 노여움을 산 해프닝,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난 올해 4월 1일 시상을 했지만 이조차 마침 스웨덴 스톡홀름 공연을 간 김에 공연장 근처 호텔에서 치른 비공개 방식이었다는 풍문 비슷한 뉴스는 지금껏 화제가 되고 있다. 내 주위 몇몇 시인들은 마음 상하거나 유쾌해 했는데, 가수들은 흐뭇했을까. 어찌 되었든 ‘과연 이번엔 어떤 파격이 이어질까’라는 문화예술계의 관심이야말로 의도했건 않았건 스웨덴 한림원이 얻은 근래 최고의 보상일 것이다.
밥 딜런은 자신을 저항시인으로 호명하는 데 고개를 내젓지만, 원래 사랑가 아니면 민중가를 읊었던 중세 음유시인 기질 그대로 발화된 그의 노래들은 다양한 저항운동과 시위 현장의 클래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에 실려’, ‘바람만이 알고 있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등의 번역 및 번안곡으로 한때 금지된 저항 가요 목록에 들었던 ‘블로잉 인 더 윈드 (Blowin′ in the wind)’가 대표작, 21세 약관의 나이에 만들어 지금껏 널리 불리는 노래다운 노래이다. 그림책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바로 그 시적인 노래 가사를 텍스트로 삼아 존 무스가 큼직한 판형으로 구현한 수채화 그림책으로,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공저)를 펴낸 황유원 시인이 원 텍스트의 함의를 잘 살펴 군더더기 없이 번역했다.
막 떠오른 해처럼 빨갛고 커다란 공을 안은 아이가 창가에 서있는 도입부 그림이 강렬하다. 아이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무스는 창문 위로 올라간 롤스크린의 갸웃이 들린 손잡이 고리와 연둣빛으로 그득한 녹음을 배경으로 날고 있는 종이비행기로 바람을 그리고, 어린 독자가 주인공 아이와 종이비행기를 쫓아 책장을 넘기도록 이끈다. 빨간 공을 든 아이, 빨간 풍선을 든 아이, 빨간 꽃을 든 아이, 빨간 배를 젓는 소녀와 함께 세상 곳곳 어디선가 누군가 끊임없이 띄운 종이비행기... 버림받고 상처입고 갇힌 자들이 길 위를 날고 바다 위를 날고 하늘 위로 날고 책의 마지막 장면까지 날고 날아 우리 마음으로 향한다. 철학적인 그림책 여러 권을 성공적으로 펴낸 화가의 탁월한 해석과 연출이 서늘하고도 아름답다. ‘얼마나 많이/하늘 위로 쏘아 올려야/ 포탄은 영영 사라지게 될까?…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야/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이 그림책을 거듭 보면서 음정과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읊조리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노래는 세계 평화를 위한 주문이로구나, 이 그림책은 그를 위한 부적이구나, 라고. 모쪼록 이 그림책이 전쟁광들에게 전해지길.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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