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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금니아빠’ 사건의 반복을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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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금니아빠’ 사건의 반복을 막으려면

입력
2017.10.22 14: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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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하고 부끄럽고 암담하다. 뻔히 살릴 수 있는 한 아이의 생명을 잃게 한 경찰이어서만이 아니다. 책임자를 엄벌하고, 특단의 대책이 줄줄이 나열되어도 반드시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조치의 허점 곳곳에 동어 반복되는 것이 바로 ‘범죄 관련성’이다. 범죄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된 순간 경찰은 총력 대응하고 사건은 해결된다. 범죄 관련성은 사후에는 명확하지만, 진행 중에는 그 판단이 쉽지 않다. “귀가하지 않고 있다” “가출했다” “연락이 안 된다”. 이런 신고는 수없이 많다.

이런 신고의 내면에는 당사자 실수, 그리고 수많은 불화와 갈등 등이 얽혀 있다. 심지어 채권자의 추심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를 찾아내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경찰은 범죄 관련성이란 ‘회로’를 만들어 놓고, ‘예’ ‘아니오’를 판단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다.

범죄 관련성이 있다면 즉시 수사로 전환한다. 수사란 이미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런데 정작 범죄 관련성을 판단하는 단계에서는 강제수사를 하지 못한다.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로 전환되지 않는 상태에서 경찰관의 직무적 상상력은 제약된다. 발품을 파는 탐문이나 공공장소 수색은 열심이지만, 통화내역 조회나 의심 가택에 대한 강제 진입은 꿈도 꾸지 않는다.

모든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 그 판단은 시스템이 아니라 각 개인의 역량과 성향에 맡겨진다. 누구에게는 범죄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고 누구에게는 아직 없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비슷한 경우 경찰이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구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일부지만 반복되는 것이다. 일부라도 엄연히 한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중대한 직무유기를 범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범죄 관련성이란 잘못된 회로를 없애지 않으면 또 같은 일이 반드시 반복된다. 경찰관의 머릿속에서도 지워야 한다. 그 당위성과 법률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수사는 경찰권 발동의 한 형태다.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했을 거라는 전제하에서 발동되는 것이다. 수사 자체가 소위 말해서 ‘뒷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경찰권 발동은 범죄수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자살을 기도하거나,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내는 작용도 있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가 경찰권 발동 요건이다.

공공의 안녕은 국가적·사회적 안녕은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안녕이다. 비정상적으로 사람의 행방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 신체에 대한 구체적이고 급박한 위험’이다. 굳이 부모나 가족 심정 등의 절박한 감정을 호소하지 않아도 국가는 사람의 생명, 신체에 대한 구체적 위험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입하도록 법은 명령하고 있다. 일체의 경찰 재량을 인정하지 않는다. 강학상으로는 ‘재량권의 0(영)으로의 수축’이라 한다.

범죄 관련성이 있든 없든, 사람의 행방불명에 대해 확인하고 찾아 줘야 하는 중대한 일이라는 인식전환과 이에 따른 법령과 제도 정비가 핵심이자 요체다. 실종과 마찬가지로 가정·데이트폭력과 관련된 신변보호 요청, 자살기도, 스토킹 등이 범죄 여부가 논란이 되는 그 경계 지점에서 전 국민의 우려와 분노를 유발하는 큰 일이 생겼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경찰개혁 권고안 그 어디에도 ‘경찰관직무집행법과 경찰 관련법 정비’는 없다. 수사 관련 법은 지나간 ‘과거’를 다루지만 경찰법은 당장의 안전과 인권, 즉 ‘현재’를 다루고, 국민 생활 전반에 관련되어 있다.

큰 잘못이다. 사전 방지보다는 사후 검거, ‘피해자는 피해있고, 당하면 고소’하라는 식의 법을 방치하고 있다. 경직법은 아득한 1953년에 머물러 있다. 이런 식의 경찰개혁은 ‘호통’과 ‘질책’의 광풍 뒤에 다시 ‘망각’,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반복’을 되풀이할 뿐이다. 끓는 냄비보다는 진중한 국민 공론의 장에서 경찰을 새로 디자인할 때다.

이동환 서울경찰청 112종합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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