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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중동] 노벨문학상만 3명 배출… ‘중동문학’의 저력

입력
2017.10.20 18: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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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아그논ㆍ이집트 마푸즈ㆍ터키 파무크…

전쟁ㆍ광신 비판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도달

10월이 되면 어김없이 북유럽으로부터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타고 노벨문학상 소식이 상륙한다. 도박꾼들조차 후보들을 거론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발표되기 무섭게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이 서점마다 수북이 쌓인다.

1901년 이래 노벨문학상은 총 39개국에서 25개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110명에게 영예를 안겼다. 올해는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다. 그 중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지역이 배출한 수상자도 3명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1966년, 히브리어), 이집트의 나기브 마푸즈(1988년, 아랍어), 그리고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2006년, 터키어)가 바로 그들이다. 모두 각 언어권에서 유일한 수상자들이기도 한 이들은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은 20세기 중동에서 문학의 꽃을 피운 선각자들이다.

유대인 삶 그린 이스라엘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

동유럽 갈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유대계 이디쉬어를 모국어로 하는 슈무엘 유세프 아그논(1888~1970). 그는 성서, 탈무드 등 유대 전통문학과 하시딤(유대 신비주의) 문학을 공부하고, 초기 시온주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민족주의 운동)에 고무돼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낯선 모국어인 히브리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대인의 역사적 경험이 그러하듯, 그의 평생의 문학적 주제는 ‘추방’과 ‘귀향,’ ‘성’과 ‘속,’ ‘전통’, ‘동화,’ ‘현실’과 ‘이상’ 간의 대립과 갈등이었다. 결코 하나일 수 없는 ‘두 고향’을 동시에 가진 그는 “유대인의 삶을 주제로 하여 사물의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독특한 예술적인 설화를 만들어 내는 작가”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대표작으로는 ‘아그눗’(1908), ‘밤손님’(1939), ‘이도와 에남’(1950) 등이 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아그논의 작품은 한국어로 완역된 바 없다.

나기브 마푸즈.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기브 마푸즈. 한국일보 자료사진

군부 독재와 싸운 이집트의 나기브 마푸즈

2006년 나기브 마푸즈(1911~2006)가 사망하고 독재 정부의 통제 속에서 치러진 장례식 날, 이집트 카이로 시내의 거의 모든 상점은 항의의 표시로 문을 닫았고 수십만 명의 시민은 ‘마푸즈는 우리들 사람’이라는 피켓을 들고 장례행렬에 참여했다. 1920년대 이집트의 민족주의 운동이 작가를 고무시켰으나, 마푸즈는 1950년대 찾아온 군부의 쿠데타와 권력 장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978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지지했으며, 1989년 소설가 살만 루슈디가 이슬람 모독죄로 곤경에 빠져 있을 때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사회주의자로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다가 1994년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공격으로 오른손에 영구적인 신경 손상을 입은 채 하루 30분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처지로 살았다.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역사 소설이었으나 이후 마푸즈의 관심은 과거가 아닌 현재로 옮겨 갔다. 출간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된 ‘나일강을 떠다니며’(1966)는 이집트 사회에서 금기시된 사회주의, 동성애, 종교 비판 등을 다루고 있으며, 1971년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누린 바 있다. 대표작 ‘우리 동네 아이들’(1959) 역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이 주장하는 단일신 신앙을 우화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집트뿐 아니라 전 아랍국가에서 금서로 지목되기도 했다.

오르한 파무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르한 파무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동서양 경계서 정체성 모색한 터키 오르한 파무크

195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퇴한 오르한 파무크(1952~)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쌓은 문학적 감수성을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아버지의 여행가방’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데뷔작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982)은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터키 공화국의 격동의 세월 동안 불어 닥친 터키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담고 있으며,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하얀 성’(1985)은 동서양의 경계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의 고백록이다. 터키 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된 ‘새로운 인생’(1994), 터키 전통 화풍인 세밀화의 황금기를 다룬 ‘내 이름은 빨강’(1998), 그리고 ‘순수 박물관’(2008) 등은 손꼽히는 대표작들이다.

비극 속 평화 추구…걸출한 작가들의 산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외에도 중동이 배출한 걸출한 작가들은 많다. ‘신과 가장 가까웠던 인간’이라 불리는 레바논의 칼릴 지브란(1883~1931), 팔레스타인의 저항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1941~2002)와 소설가 갓싼 카나파니(1936~1972), ‘시로써 파괴된 아랍세계를 구원’하고자 애쓰는 시리아 출신의 망명 시인 아도니스(1930~),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아모스 오즈(1939~)와 A.B. 여호수아(1936~)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인간 세계의 심장을 파괴하는 전쟁과 종교적 광신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비극 속에서도 타인을 이해하며 인간 영혼의 소중한 빛을 찾아가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반란자들’이다.

최창모(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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