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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여성 출산 기피 ‘가방 끈’과 무관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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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여성 출산 기피 ‘가방 끈’과 무관해진 이유

입력
2017.10.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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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정부-한유총 졸속합의 우려 기자회견' 에서 '정치하는 엄마들' 소속 회원이 유아교육, 보육 정상화를 위한 3대 요구안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국공립 확대, 사립 공공성 강화, 당사자 참여보장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정부-한유총 졸속합의 우려 기자회견' 에서 '정치하는 엄마들' 소속 회원이 유아교육, 보육 정상화를 위한 3대 요구안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국공립 확대, 사립 공공성 강화, 당사자 참여보장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일입니다. 한 국책연구기관 소속 연구자가 저출산 해법을 제시한 보고서를 내놨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있는데요. 이 연구자는 보고서에서 ‘여성의 높은 스펙이 저출산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스펙을 낮추거나 또는 눈을 낮추게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특히 그는 해결책으로 “(여성의) 불필요한 스펙 쌓기를 고용시장이 조장하고 있다면 거품을 뺄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취업 과정에서 휴학ㆍ연수ㆍ학위ㆍ자격증ㆍ언어능력 등 불필요한 스펙을 명시하고 이를 오히려 채용에 불리한 요건으로 작용하게 하면 (거품을 빼는 것이) 일부 가능할 수 있다” “고학력ㆍ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혼인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을 펴 공분을 샀습니다. (관련기사☞ “여성 고스펙 탓 출산 기피” 국책연구원 보직 사퇴)

여성의 높은 스펙이 설령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라 하더라도, 출산 장려를 위해 여성의 고학력화를 막자거나, 고스펙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공감을 사기 어려웠습니다.

여하튼 이 때만 해도 연구자가 제시한 해결책에 주로 화살이 집중되고 ‘여성의 높은 스펙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분석에는 큰 문제 제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펙 중 스펙’인 학력이 여성의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적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기혼 여성의 가족 가치관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을 보면, 2000년에는 초등학교 이하 학력을 가진 여성과, 대학 이상 학력을 가진 여성의 기대 자녀 수는 0.72명 차이가 났고, 현존 자녀 수는 1.02명 차이가 났습니다. 학력 수준에 따라 자녀 수가 거의 한 명 가량 차이가 난 건데요. 하지만 이런 격차는 2015년에는 각각 0.18명(기대 자녀 수), 0.42명(현존 자녀 수)으로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에는 20~49세 대졸 이상 여성의 합계 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48명으로 고졸 여성의 1.51명보다 낮았는데요. 2015년에는 각각 1.32명(대졸 이상 여성)과 1.02명(고졸 여성)으로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출산 기피 현상이 더 이상 고학력 여성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것이 보고서를 쓴 배혜원 보사연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배 연구원은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기회 비용’의 문제보다는 육아 과정에서 소요되는 ‘실질 부담’으로 인해 저학력(저소득) 여성의 출산 여력이 감소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니까 출산과 육아에 수반되는 값비싼 기회 비용에 의한 출산율 감소는 이미 예전 일이 됐고, 최근 10여년 사이의 출산율 감소는 육아 과정에 드는 경제적 부담을 저학력 여성들이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겼다는 분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육 비용의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양질의 양육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 영역에서 양육 인프라 제공 확대가 중요하다”고 배 연구원은 주장합니다.

저출산 해법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다를 수 있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고학력 여성이라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그다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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