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이나 말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우입니다. 다른 사람의 권세를 빌려 허세를 부린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 짐승도 고향을 그리며 죽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시집가는 날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도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여우고개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우가 들어가는 이야기나 지명들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고 전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답니다. 그만큼 여우는 인간들의 삶 주변에 가까이 지내온 야생동물이었던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여우로 부르지만 영명을 직역하여 붉은여우(Red fox)라고도 부릅니다. 학명은 Vulpes vulpes로 식육목 동물들 중에서 가장 널리 서식하는 종이죠. 북극과 유라시아 대륙, 북아프리카와 북미 전역에 분포합니다. 호주에는 1830년대에 도입이 되어 토종 동물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죠. 이렇게 널리 분포하니 약 45개 아종이 존재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앙증 맞은 외모는 사냥감 덕분
해부학적으로는 다른 갯과 동물과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보통의 다른 갯과 동물은 먹이를 추적하는 강인한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특히 뜀뛰기와 먹이를 붙잡는데 다리를 많이 사용하기에 뒷다리가 더 길어지고 가늘어졌죠. 이러한 특징은 자주 사냥하는 먹이 종류에서 기인합니다. 여우는 주로 설치류와 조류, 토끼 그리고 딱정벌레 등을 비롯한 곤충을 사냥합니다. 자신보다 큰 동물보다는 주로 멧토끼 수준의 먹잇감을 잘 잡지만, 다른 대형 포식동물이 사냥하거나 죽은 동물을 먹기도 합니다. 먹잇감이 많을 경우 충분히 잡아 숨겨두고 먹는 습성도 다른 갯과 동물과는 좀 다른 특징이죠.
긴 주둥이와 날카로운 이빨, 가느다란 검은 다리, 쫑긋한 귀와 탐스러운 꽁지는 먹이 사냥에 최적화된 것입니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게 넓게 벌려야 했기에 주둥이는 길어졌고, 멀리 혹은 높게 뛰어올라 미사일처럼 먹이에게 꽂혀내려야 했기에 다리는 가늘고 길어졌습니다. 쫑긋한 귀는 보이지 않는 곳의 먹이 위치를 정확하게 탐지하는 레이더의 역할을 하며, 뛰어오를 때 공중에서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풍성한 꽁지를 이용합니다. 이러한 모든 습성이 다른 갯과 동물들과는 사뭇 다르고, 오히려 고양이에 가까운 특징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여우가 사냥할 때 이용하는 청각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넘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100m 떨어진 곳의 쥐가 찍찍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대단하죠. 이러한 능력은 눈밭 아래에 굴을 만들어 다니는 설치류를 사냥할 때 특히 잘 발휘됩니다. 여기에 또 다른 비밀 병기가 있죠. 바로 자기장 인지능력입니다. 2011년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에 게재된 보고에 따르면, 여우가 북극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의 20도 이내에서 사냥을 시도했을 때 성공률은 놀랍게도 74%였다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동서 쪽으로 사냥을 시도할 때는 불과 18%의 성공률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 분명히 자기장을 인식하고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눈밭 아래에서 활동하는 설치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시력은 별 도움이 되지 않기에 민감한 청각과 더불어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죠. 최근 논문에 따르면 갯과, 족제비과와 곰과의 망막 속 원추세포에 크립토크롬이라는 자기장 감지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많던 여우는 왜 사라졌을까
이러한 여우가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우는 깊은 산속에 서식하기보다는 인가 주변의 야산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이었죠. 야생동물이 서식지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먹잇감의 풍부도가 결정적입니다. 인도 표범이 보호 지구인 국립공원 내부보다 국립공원에 인접한 인간 거주지에 많이 서식하는 이유가 바로 좋아하는 먹이인 개 때문이라는 연구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여우가 우리 곁을 떠나 버린 것은 쥐잡기 운동의 부작용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쥐의 수가 줄어들었고, 쥐약을 먹은 쥐를 여우가 먹는 식의 2차 중독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한국 여우는 1974년 지리산에서 밀렵된 뒤 30년간 발견되지 않다가 2004년 양구에서 사체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2014년 밀양 가지산에서 영상으로 촬영되었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죠.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여우를 되살리기 위해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소백산에서 여우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태계는 복잡 다양한 그물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다양한 포식자와 피식동물이 존재할 때 생태계는 안정되고 건강해집니다. 산길을 걷다가 문득 우리 앞을 지나가는 탐스러운 긴 꼬리의 동물을 보기 위해서, 우리가 없애버린 동물을 다시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것입니다.
글·사진=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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