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간 나오토 (菅直人) 전 총리가 7일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적극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간 전 총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민주당 정권의 총리였으며 내년 중 예정된 차기 총선에서 ‘원전 제로(0)’이슈로 일본 내 야권이 결집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민진당 소속 현역 중의원이다.
간 전 총리는 이날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제1중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한국에서 만나 고리원전 중지를 두고 의기투합한 적이 있는데 대통령이 되자마자 바로 탈원전 선언을 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6년이 지나고 아베 정권이 원전을 유지한다는 방침인데 문 대통령이 한발 앞서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재임 중 “일본이 과거 식민지로 삼은 행동을 한국민에게 솔직히 사죄했다”며 ‘간 나오토 담화(2010년)’ 당시를 떠올리면서 경색된 양국관계를 걱정하기도 했다. 간 전 총리는 한일병합 100년을 맞았던 2010년 8월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담화의 주역이다.
_탈원전 선언을 한 문 대통령과 어떤 인연이 있나.
“대선 이전에 만났다. 부산 출신이라 고리원전을 중지하는 의견을 서로 나눴고 이것을 두고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그 후 대통령이 돼서 실제로 바로 탈원전 선언을 해 깜짝 놀랐다.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 있음에도 딱 잘라서 얘기한 점은 놀라운 일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상당히 친했다. 대통령 취임식 때도 갔고 일본에 왔을 때도 만났다.”
_일본의 원전 상황과 비교하면 한국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나.
“문 대통령이 원전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취임 후를 주목하고 있었다. 원전 폐지선언은 바른 판단이었고 기쁘게 생각한다. 일본은 (탈원전이)늦어지고 있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_탈원전 전국신당 창당과 탈원전을 이슈로 야권이 뭉칠 것을 호소하고 있는데.
“민주당의 마지막 정권이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당시 2030년대에는 원전제로를 달성한다는 게 방침이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2012년 총선에서 자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원전을 20~22% 정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민진당(민주당의 후신)의 렌호(蓮舫) 대표 시절 원전제로 시한을 2030년대에서 2030년까지로 앞당기는 것을 함께 추진하다 최종결론이 나기 전 당대표가 사임하게 됐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의원선거 2번, 참의원선거 2번 있었는데 탈원전이 한번도 선거이슈가 된 적이 없고 아베노믹스만 중시됐다.”
_탈원전 연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탈당까지 할 생각인가.
“지금의 정당틀을 벗어나 녹색당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가능하면 민진당이 2030년보다 더 빠른 시기 원전제로 방침을 공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안되면 어떻게 할지 생각 중이다.”
_구체적으로 추구하는 원전정책은 무엇인가.
“현 시점에서 새로운 재가동을 멈춰야 한다. 매년 하는 정기점검을 통해 재가동 여부를 판단할 때 단계적으로 모두 정지시키면 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에너지 소비량의 2%만 원전에 기대고 있다. 후쿠시마사고 직후엔 2년 정도 원전 에너지가 0%였던 적도 있다. 사실상 원전을 가동하지 않더라도 전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
_한국에선 공론화 시민참여단을 구성하는 등 탈원전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일본도 민주당 정권 때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구했다. 자민당 정권으로 바뀌면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기회를 거의 만들지 않고 있다. 언론조사에 의하면 원전제로에 60%, 70%가 찬성하는데도 그렇다. 민주주의라면 전문가 의견을 참고해 최종적으로는 국민이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일본도 전문가들이 있지만 업계와 이해관계가 엮인 이들의 의견만 들으면 판단이 어긋날 수 있다.”
_한국에선 탈원전 공론화가 여론몰이에 휘둘릴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는 보다 적극적인 선언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전기값이 올라간다는 논란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장래의 부담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원전이 비싸다는 결론이 나와있다. 폐기물 처리비용이나 새로운 원전을 세우는 부담을 감안한다면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보다 2, 3배는 비싸다.”
_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가장 교훈이 된 점은.
“제때 냉각수를 공급 못해 사고가 확대됐다면 현재의 30㎞가 아닌 반경 250㎞까지 피난 가야 할 상황이었다. 이 안에는 도쿄도 들어있다. 5,000만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는데 50년간 피난 가 있어야 할 수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
_일본 총리의 역사인식 중 가장 진화된 담화를 발표했다.
“한일병합 100주년인 2010년이 일한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때였다. 그때 100년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일본의 행동에 대해 한국민께 사죄한 것이다. 장래의 우호관계를 만들어가길 원했다. 조선왕조 의궤도 반환했다. 그런데 당시엔 문제가 크게 되지 않았던 부분이 새롭게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담화발표 취지대로 한일관계가) 꼭 그렇게 되지 않은 것도 내 입장에선 상당히 유감이다.”
_한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일본과 한국은 수천년간 교류해왔다. 많은 것이 중국과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왔다. 아내가 ‘다도(茶道)’를 하는데 조선 때부터 내려온 도자기를 상당히 귀하게 생각한다. 양국간 역사 안에는 여러 트러블도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 평화롭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정치가를 비롯해 각자가 할 수 있는 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나도 반드시 온 힘을 다할 것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1946년생으로 도쿄공대 출신인 간 전 총리는 ‘공포의 화학물질을 추방하는 그룹’ 등 시민단체 대표를 거쳐 1980년 제36회 중의원선거를 통해 정계 입문했다. 현재 12선 중의원 의원이다. 1996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등과 민주당을 출범, 자민당에 대항하는 거대야당의 토대를 마련했다. 2003년 거물정치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당수를 맡고 있던 자유당과 합당, 2009년 총선에서 자민당을 누르고 정권을 차지하는 데 공헌했다. 2010년 6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시기적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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