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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별이 된 호랑이 ‘크레인’에게

입력
2017.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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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강원 원주 드림랜드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송되던 날, 황윤 감독이 크레인을 쓰다듬고 있다. 동물을 위한 행동
2012년 강원 원주 드림랜드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송되던 날, 황윤 감독이 크레인을 쓰다듬고 있다. 동물을 위한 행동

크레인, 하늘나라에선 행복하니?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가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였어. 태어난 지 2, 3주쯤 돼서 부스스한 털을 하고 있었지. 엄마 선아와 아빠 태백은 남매였어. 동물원이 멸종위기종의 보전센터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주먹구구식으로 교배를 시킨 결과야.

그러다 보니 너는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했고 눈에 백내장도 있었지. 몸이 약한 네가 빨리 죽을까 사육사들은 걱정이 많았고, 튼튼한 호랑이로 자라라는 바람을 담아 중장비 ‘크레인’ 이름을 붙여주었어. 이름 덕분이었을까. 17년을 살다 눈을 감았구나.

어릴 적 목줄에 묶이는 훈련을 받는 너를 보았어. 야생성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었지. 너는 답답한지 목을 긁어댔어. 그리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콘크리트 방에서 홀로 목이 쉬도록 종일 울고 있었어.

아기 때 크레인은 야생성을 길들이기 위해 목줄에 묶이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영화 작별 스틸 컷
아기 때 크레인은 야생성을 길들이기 위해 목줄에 묶이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영화 작별 스틸 컷

한 손을 철창 사이로 넣어 너를 쓰다듬어주고, 또 다른 한 손으론 카메라 촬영을 하면서 나는 약속하고 또 약속했어. 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하겠다고. 그렇게 가슴으로 울며 2001년,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을 만들었어.

서울대공원은 자라면서 송곳니가 밖으로 튀어나와 이른 바 ‘인기 동물’이 되지 못한 너를 2004년 강원 원주 동물원 ‘치악 드림랜드’로 보냈어. 어린이들에게 꿈을 준다는 그곳 ‘드림랜드’는 동물들에겐 지옥이었어. 2006년 너를 찾아갔지만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네가 있는 동물원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어.

2016년 황윤 감독과 김영준 국립생태원 연구부장은 강원 원주 드림랜드에 있는 호랑이 크레인을 찾아갔으나 상태가 좋지 않은 것만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김영준 박사 제공
2016년 황윤 감독과 김영준 국립생태원 연구부장은 강원 원주 드림랜드에 있는 호랑이 크레인을 찾아갔으나 상태가 좋지 않은 것만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김영준 박사 제공

나는 너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지만 2012년 11월에야 너를 다시 찾아갔단다. 넌 나에게 마치,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동생 같이 느껴졌어. 피골이 상접한 너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다가왔어. 킁킁 소리를 내며 철창에 몸을 비벼댔지. 크레인, 살아있었구나.

너의 기구한 삶은 언론을 통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어졌어. 시민들의 요청으로 너는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고, 거기서 노년을 보낼 수 있게 됐지. 그리고 마침내 시민단체와 몇몇 국회의원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해 ‘동물원 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단다. 비록 많은 부분들이 삭제된 채 통과됐지만, 동물원을 관리하는 법이 국내 처음으로 제정된 데 그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

종 보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못생긴 외모로 사람들의 인기도 끌지 못한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너는 동물원에서 ‘잉여’의 존재였을지 몰라. 하지만 너는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 인생의 스승이었어. 그리고 너는 동물원에서 고통 받는 동료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진 천사였어.

2012년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온 크레인이 힘겹게 서 있다. 동물을위한행동 제공
2012년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온 크레인이 힘겹게 서 있다. 동물을위한행동 제공

너와의 긴 인연을 통해 나는,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고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갖는 힘’을 알게 됐단다. 처음에 너의 존재를 아는 건 동물원 관계자를 제외하곤 나뿐이었지만, 이제는 수많은 시민들이 너를 알게 됐고 기억하고 있어. 그 누구도, 그 이름과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잉여가 아님을, 너를 통해 배우게 되었어.

살아서 단 한 번도 숲 속에서 뛰어본 적 없는 너. 몇 걸음 걸으면 끝나는 좁은 철창 안에서 평생을 홀로 살다 죽어간 슬픈 호랑이. 부디 하늘나라에선 마음껏 뛰어놀기를. 크레인,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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