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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분노의 여신들’은 어떻게 ‘자비의 여신들’이 되었나

입력
2017.08.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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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스테이아 비극 3부작은

데메테르 여신 축제서 영감 받아

아이스킬로스, 그리스인들에게

‘공포-죽음-부활’ 순환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운명 결정하는 연습 시켜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원전 330년 작품 ‘델피에 있는 오레스테스’. 그 곁에 있는 건 아테나 여신과 친구 필라데스다. 제단 위와 옆에는 분노의 여신들과 신탁을 위한 예언자가 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원전 330년 작품 ‘델피에 있는 오레스테스’. 그 곁에 있는 건 아테나 여신과 친구 필라데스다. 제단 위와 옆에는 분노의 여신들과 신탁을 위한 예언자가 있다.

아이스킬로스 비극 3부작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 작품은 ‘에우메니데스’다. 고대 그리스어 ‘에우메니데스(Eumenides)’를 번역하자면 ‘자비로운 자들(여신들)’이란 의미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고 아르고스의 왕권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정의의 상징인 세 명으로 구성된 ‘분노의 여신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추적하여 모친을 살해한 대가를 요구한다. 아직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이 정의(正義)다. 그들은 오레스테스에게 살해에 해당하는 똑같은 형벌인 사형을 집행할 것이다. ‘에우메니데스’는 오레스테이아 비극 제2부에선 ‘분노하는 여신들’이라고 불렸다. 어떻게 ‘분노하는 여신들’이 ‘자비로운 여신들’이 되었을까?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이아 비극 3부작에서 무엇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가르치려고 시도했나?

오레스테이아의 세 번째 작품 ‘자비로운 여신들’

‘자비로운 여신들’은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비치는 희망의 불빛이다. 포도재배의 신이며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죽어야 한다.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의례에 참여하는 자들은 오래된 자신을 유기하기 위해 ‘무아 상태’에 진입하는 방식을 의례로 만들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종교와 신화에서 그리스 비극과 엑스타시의 신이다. 포도주는 고대 지중해에서 문명과 문화의 상징이었다. 포도주와 관련된 종교는 그리스에서 기원전 7세기에 정착되었다. 초기 예술에 등장한 디오니소스 신은 성인 남성으로 턱수염과 긴 옷을 걸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와는 달리 후기 디오니소스는 수염이 없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육감적인 반나체로 묘사되었다.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하는 가을은 “야만적이며 동시에 아름답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시절이지만, 들판은 과실과 곡식으로 가득 차있다. 가을은 풍요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준비하는 상실의 시간이다.

테스모포리아 축제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죽음과 재생의 축제인 ‘테스모포리아(Thesmophoria)’에서 영감을 받았다. 테스모포리아는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가 납치된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가 그녀를 다시 지상에 데려오는 것을 기념하는 고대 그리스 축제다. 매년 늦가을 추수와 관련된 축제다.

이 축제의 특징은 성인 여성만 참석할 수 있고, 이들이 하는 의식은 비밀에 부쳐져 있다. 아테네 여성들은 추수하고 씨를 뿌리면서 풍요를 위한 노래를 한다. 이 노래에는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대한 저주와 봄에 찾아올 축복이 공존한다.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추수한 농산물을 주신 신에게 감사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은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핵심인 ‘엘레우시스 신비 의례’다.

‘뮈’와 ‘옴’

엘레우시스 신비 의례란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고 문명 구축의 기반이 된 농업이 신의 선물인 추수를 감사하는 의식으로 시작하였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가을이란 계절이 가져다 주는 풍성한 곡식과 과실을 경이롭게 여겼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풍성한 결실은 누군가 그것에 걸맞은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에 맺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레우시스’는 최근 영화 ‘엘리시움’에도 등장했듯, 미래에 올 이상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다. 엘레우시스 또한 고대 그리스가 등장하기 전인 기원전 15세기 미케네 시대 존재했던 도시 엘레우시스에서 유래하였다. 미케네인들은 이곳에서 특별하면서도 신비한 의례를 거행하였다.

‘엘레우시스’라는 말의 뜻은 ‘도착’ ‘강림(降臨)’이다. 고대인들은 이 의식을 통해 만물을 소생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세계를 찾아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힘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알 수 없어 이를 ‘신비’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 의례를 ‘뮈스테리온(mysterion)’이라고 말했다. ‘신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미스터리(mystery)’가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 동사 ‘뮈에오(myeo)’는 ‘신비한 의례에 참석하다’라는 의미이며, 그리스어 명사 ‘뮈스테스(mystes)’는 ‘그런 의식에 참석하는 입교자, 통과 의례자’라는 뜻이다. 신비한 의례에 참석하는 자들이 하는 행위들이 있다. 우선 입을 다물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칠흑과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뮈스테리온(mysterion)’의 첫 음절 ‘뮈(my)’는 눈 감고 입 다물기 위해, 자신에게 몰입하기 위한 내적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다.

인류는 자신이 새로운 인간으로 도약하기 위해 일상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행위를 준비하였다. 그것을 ‘의례’라고 한다. 이 의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바로 ‘뮈’다. 고대 인도인들은 통과의례를 위한 첫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 첫 소리를 ‘옴(Om)’이라고 불렀다. ‘옴’은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Upanisad)’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우파니샤드는 ‘옴’을 ‘우주의 소리’ 혹은 ‘신비한 소리’ 혹은 ‘힌두교 베다 경전의 총체’라고 여겼다. 우파니샤드는 ‘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옴은 모든 베다가 선포하는 단어다. 모든 수련에서 표현되는 단어다. 모든 현자들의 삶을 위한 단어다. 이 단어의 본질을 이해하라. ‘옴’! 이것이 그 단어다. 이 음절이 브라만이고, 이 음절이 존귀하다. 이 음절을 아는 자는,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카타 우파니샤드 1.2.15-16)

엘레우시스 신비의례

엘레우시스 신비 의례는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와 그의 딸 페르세포네에 관련된 전설을 기초도 형성되었다. 이 의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7세기에 기록된 ‘데메테르를 위한 호메로스의 시’다. 이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페르세포네는 평온한 들판에서 자유롭게 거닐다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가 그것을 잡으려다 땅이 열렸다. 마침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가 황금마차를 타고 나타나 페르세포네를 지하로 납치해 내려간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 장소로 왔지만 찾지 못하고 9일 동안 온 땅을 수색하며 다닌다. 그녀는 열흘째 되던 날에,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보는 태양신에게 딸의 행방을 묻는다. 태양신은 제우스가 페르세포네를 자신의 동생인 하데스에게 아내로 주었다고 말해준다. 데메테르는 너무 화가나 지상의 어떤 식물도 생존하지 못하게 가뭄을 내리자, 제우스가 개입하여 페르세포네를 지하세계로부터 풀어준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지상에서 만난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이 조건은 우주가 운행하고 만물이 유지되기 위한 원칙이다. 지하세계에 일단 들어온 자는, 그곳을 영원히 떠날 수는 없다. 페르세포네는 매년 지하세계로 내려가 죽음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

지상의 풍요는 그녀의 충분한 죽음에 달려있다. 페르세포네는 추수가 끝나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겨울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만물이 봄에 부활하여 가을에 풍성한 곡식과 과실을 낼 수 있다. 대지의 신인 데메테르는 사라진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딸을 찾으러 지하세계로 내려가면 지상엔 가뭄이 온다. 데메테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들 중 가장 감동적이며 인간적인 이야기다.

죽음과 재생, 데메테르 이야기

데메테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인간의 죽음과 재생, 대결과 화해, 고통과 환희라는 인간의 삶과 문화를 이해라는 큰 틀을 제공하였다. 특히 데메테르가 직접 지하세계로 내려가 인간의 희노애락을 몸소 체험하는 첫 번째 신이 되었다. 엘레우시스 신비 의례는 페르세포네의 납치, 데메테르의 역경과 고통, 그리고 이들의 행복한 만남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세 가지 중요한 단계를 보여준다.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위협과 공포, 자신의 삶을 보존하기 위한 분투,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후 찾아오는 환희다.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진 세계관이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는 이 신비의례를 아테네가 당면한 위대한 문명을 위한 희망찬 노래로 바꿨다.

아이스킬로스는 매년 반복되는 공포, 죽음, 그리고 재생이라는 자연의 순환을 자신의 비극을 통해 과감하게 끊으려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무대에 올려 더 이상 공포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려는 그리스인들 삶의 태도를 바꾸려 한다.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 작품 ‘자비로운 여신들’은 디오니소스와 엘레우시스 신비 의례를 대체한다.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문화를 연습한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자신의 운명을 공포의 영원한 순환에서 탈출시켜 광명한 미래를 위한 제도로 찾아가는 시도다. 그들이 고안해낸, 아테네 시민들의 문화를 구축할 제도는 무엇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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