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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몰락] “20년 전과 똑같이 가르치는 한국, 이제는 큰 틀 새로 짜야 해요”

입력
2017.08.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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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사교육 잡아야 하지만

앞선 아이 잡아당기지 말고

정부가 뒤처진 학생 밀어줘야

박준언 숭실대 영문과 교수는 “입시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낮추려는 정부 정책이 오히려 빈부격차에 의한 글로벌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 영어교육의 큰 틀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박준언 숭실대 영문과 교수는 “입시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낮추려는 정부 정책이 오히려 빈부격차에 의한 글로벌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 영어교육의 큰 틀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습니다. 영어의 중요성을 절감한 부모들은 시험과 상관없이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자녀들에게 영어 사교육을 계속 시키겠죠. 반면 ‘영어를 좀 안 해도 되겠다’ 생각하는 그룹은 경제력이 약한 집단입니다. 영어의 중요성은 날로 강화되고 있는데, 10년 후 두 그룹 간 갭이 얼마나 벌어질지 생각해 보세요. 이제는 거시적 관점에서 영어교육의 큰 틀을 새로 짜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해야 할 때예요.”

한국외국어교육학회장인 박준언 숭실대 영문과 교수를 만나 한국의 영어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물었다. 중ㆍ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이기도 한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도입을 시도했던 영어 몰입식 교육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 학자이기도 하다.

-한국 영어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점이라기보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치는 데에 근본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초등생은 주당 두세 시간, 중학생은 서너 시간, 고교생은 너덧 시간 배우는데,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노출량이 절대적으로 적다. 학교 밖에서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영어로 다른 과목들을 가르치는 몰입교육이 대안이 될 수 있나.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는 캐나다와 달리 우리나라는 이중언어 사회가 아니라 적용하기에 여러 한계가 있다.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면도 있다. 한국이 세계 중심부에 진입하면서 영어 사용능력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커졌는데, 이걸 모두 사교육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하려던 몰입식 교육이 논란만 남기고 묻혀 버렸는데, 이제 고교과정에서 한 과목 정도 영어로 가르쳐 보는 것은 논의를 해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재 유치원 과정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다. 이 갭도 큰데.

“우리나라는 이중언어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말부터 배운 후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습득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영어에 노출시키는 건 언어적 혼란만 준다. 어느 정도 우리말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외국어를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이 때가 유치원 시기인 것은 맞다. 쓰기와 읽기를 배제한, 듣고 말하는 영어는 노출시켜 주는 게 나쁘지 않다. 모국어 발달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인지 활성화에도 긍정적 효과가 크다. 다만 모국어를 억압하며 영어를 강제 주입하는 식의 극단적 경우는 피해야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유치원 과정에서 영어를 배워 오는데 초등학교 3년에 다시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것은 교육과정의 연계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한국의 영어교육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리 영어교육 정책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움직여 왔다. 정권에 따라 널뛰기를 했다. 이제 큰 틀에서 우리 국민들이 어느 수준까지 영어를 할 수 있어야 하는지, 이를 위해서 공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차분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복덕방을 하든 카페를 하든 민박집을 하든 영어가 꼭 필요한 시대로 바뀌었는데, 영어 교육과정은 20년 전과 똑같다. 과도한 사교육은 당연히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처진 아이들을 밀어주는 것이지 앞서 나가는 아이들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사교육을 못 받는 아이들을 이끌고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글ㆍ사진=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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