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엊그제 만기 출소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사법부 판단의 적정성 논란이 정치 쟁점으로 확산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 판결에 대해 집권당인 민주당이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 "억울한 옥살이" 운운하는 등 무차별 비난을 쏟아 내며 그를 '정치 보복의 희생양'으로 옹호한 게 발단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즉각 "사법부의 권위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시하는 신 적폐이차 후안무치"라고 역공한 것은 낯설지 않다. 개혁을 외치면서 자신들에게는 유독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고 남 탓을 일삼는 집권세력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건설업자로부터 3차례에 걸쳐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기소된 한 전 총리의 재판은 시종 논란을 빚었다. 받은 돈의 성격을 놓고 1심 법원은 무죄를, 2심은 유죄를 선고한 것은 공방의 치열함을 방증한다. 총리를 지낸 야당 중진의 유무죄를 다투는 민감성을 의식한 대법원이 심리를 2년 이상 차일피일 미루다 2015년에야 전원합의체를 열어 8 대 5의 다수결 유죄를 확정한 것 역시 고심의 깊이를 보여 준다. 하지만 당시 당사자인 한 전 총리는 이 판결에 대한 항의로 수감 때 상복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었고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정의와 인권의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마저 정치화됐다"고 거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 기소독점주의의 폐단으로 사법부정의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 것이나, 당 대변인이 "정치탄압을 기획하고 검찰권을 남용하며 정권에 부화뇌동한 자들은 청산돼야 할 적폐 세력"이라고 논평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 전 총리는 출소하면서 "수감 2년 동안 가혹한 고통이 있었지만 저의 진실을 믿고 응원해 준 믿음 덕분에 시련을 이겨 낼 수 있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사 낭독에 따른 '정치적 희생양'을 자처하기도 했다. 한 전 총리가 출소하는 새벽에 당 지도부를 포함한 20여명의 의원이 몰려가 '양심수' 코스프레를 벌인 것도 봐 줄 만하다.
그러나 그런 행태가 더 이상 용인되거나 이해돼선 안 된다. 동지애가 필요했던 야당 때의 '변두리 의식'이 집권 후 "우리 사람이니까..."라는 식의 저급한 온정주의와 선민의식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더욱 위험한 것은 적폐 운운하며 오로지 법과 제도로 운영돼야 할 사법부마저 촛불혁명 등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비헌법적 발상이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이 "재판은 법과 증거, 당사자의 증언 등을 통해 이뤄진다"며 한 전 총리 판결 논란을 '근거 없는 비난'으로 일축한 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다.
얼마 전 청와대는 대법관 경력이 없는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법관 독립과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두 축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사법개혁'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 논란 탓에 이 취지는 '법원 코드화' 비난 속에 이미 퇴색됐다. 민주당의 뒤늦은 침묵이 이런 반성의 결과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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