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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무진기행’ 출판… 저작권 다툼 왜 없지?

입력
2017.08.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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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판본으로 동시에 출간되고 있다. 한 작품을 한 출판사가 독점으로 출간하는 국내 관행에서 살아있는 작가의 대표작을 여러 출판사가 동시에 내는 건 이례적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판본으로 동시에 출간되고 있다. 한 작품을 한 출판사가 독점으로 출간하는 국내 관행에서 살아있는 작가의 대표작을 여러 출판사가 동시에 내는 건 이례적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음사는 지난달 20일 동네서점 전용 문고본 시리즈 ‘쏜살문고’를 선보였다. 첫 권은 김승옥 작가의 소설집 ‘무진기행’. 전국서점 130곳에서 유통되는 이 책은 저렴한 가격(6,800원)과, tvN 예능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소개 효과 등으로 발간 3주 만에 3쇄 4,000부를 찍으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대형서점에서는 ‘무진기행’을 살 수 없을까. 정답은 ‘당연히 살 수 있다’. 단 다른 출판사 혹은 같은 민음사에서 낸 다른 판본을 구입할 수 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판본으로 동시 출간되고 있다. 출판 저작권이 작가 사후 70년까지 보장되고, 한 작품을 한 출판사가 독점으로 출간하는 국내 관행에서 살아있는 작가의 대표작을 여러 출판사가 동시에 내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현재 ‘무진기행’을 내는 것으로 확인된 출판사는 민음사(쏜살문고, 세계문학전집 149번)를 비롯해 문학동네(한국문학전집 1권, 김승옥전집 1권), 범우사(범우문고 13), 사피엔스 21(한국문학 중단편소설 2) 등 네 곳이나 된다. ‘그림으로 만나는 무진기행’(아르떼), ‘나의 첫 필사 노트: 무진기행’(새봄) 등 원작에 화집을 넣는 등 변형한 판본까지 합하면 여섯 곳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출판사 더클래식은 ‘무진기행’을 자사 ‘한국문학컬렉션’ 시리즈 1권으로 선정, 이달 15일 출간을 앞두고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예약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시중에 출간되고 있는 김승옥 '무진기행' 판본들. 생존 작가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다.
시중에 출간되고 있는 김승옥 '무진기행' 판본들. 생존 작가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다.

출판 관계자들은 표절 논란 등으로 문학계가 수년간 침체기에 빠지면서 ‘무진기행’ 간행이 부쩍 늘었다고 분석한다. 윤동주 시선집, 백석 시선집 등 고전문학 출판이 늘고, 최근 문고판 출간이 유행처럼 번지는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쏜살문고’를 기획한 유상훈 민음사 편집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작품, 오래오래 읽힐 기념비적 작품이라 ‘무진기행’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생존작가의 작품이 여러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것을 두고, 출판계에서는 “김승옥은 예외”라고 입을 모은다. 김승옥 작가만은 예전부터 그렇게 내왔다는 설명이다. 황석영, 최인훈, 윤후명 등 생존하는 같은 세대 작가 중 같은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낸 경우는 앤솔로지(선집) 등을 제외하면 매우 드물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통상 작가 전집을 낸 출판사가 출판권을 독점 관리하는 게 관행이지만, 2004년 김승옥 전집을 출간한 문학동네가 수 십년 간 신작을 발표하지 않은 작가의 인세, 계약 수입 등을 고려해 독점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저작권 관리를 대행하는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는 독점 계약이 아니면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게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통상 신작 출간은 독점 계약이 일반적이지만, 개정판 발간은 독점 계약이 아닌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이 많다”고 밝혔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단행본 문고판 전자책을 각각 계약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한 출판사가 작품 출판권을 전부 갖는 독점 계약이 대다수”라며 “김연수, 김영하처럼 작가의 모든 작품을 한 출판사가 독점 출간하는 최근 출판계 흐름에서 김승옥 현상은 ‘예외’”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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