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양천구 가양동 CJ E&M 스튜디오는 여성 출연자 6명의 입담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개그우먼 김숙과 방송인 박혜진, 배우 이영진을 비롯해 변호사 김지예, 사업가 이여영, 언론인 이지혜가 모여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수다를 주고 받았다. 이들이 모인 유는 케이블채널 온스타일과 올리브에서 방송되는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 녹화를 위해서였다. 지난 3일 첫 전파를 탄 ‘뜨거운 사이다’는 여성 출연자들만의 화끈한 대화로 방송가 안팎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주제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 사건을 두고 이들의 입술이 80분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연출가가 "컷!"을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 김숙이 크게 말했다. "에어컨 좀 더 세게 틀어주세요!"
"더 뜨겁고 세고 강렬하게"
이날 주제는 녹화 이틀 전에 급하게 바뀌었다. 원래는 반려견의 공공장소 허용기준을 논할 예정이었다. 제작진이 시의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주 1회 녹화를 하고, 주제 선정도 화제성에 따라 변화를 주고 있다. 이틀 동안 '뜨거운 사이다' 출연자와 제작진의 휴대폰은 불이 났다. 이들은 모바일 단체대화방을 통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한다. 제작진은 1차로 선정한 주제를 채널 사업부와 함께 2차로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출연자들의 의견을 물어 최종 낙점한다. 박혜진은 "그 주제가 합당한지에 대해 회의를 한다"며 "미리 주제를 정해야 그에 맞는 발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계 이슈가 주제로 나오자 이영진과 이지혜는 적극적으로 토론에 가담했다. 이지혜는 "영화 현장에서 연출자가 배우에게 분명한 디렉션을 주지 못했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영진도 영화계의 열악한 환경을 꼬집으며 "감독에게 계약서에도 없는 노출을 강요 받은 적 있다"는 충격고백이 이어졌다. 김숙도 "신인시절 동료가 (제작진에게)뺨을 맞는 걸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김지예 변호사는 "촬영 현장에서 폭행 등이 암묵적 관행으로 여겨지면 피해자들에겐 유리하지 않다. 법원이 어느 정도 참작하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녹화장에선 욕설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방송에 부적절할 수 있는 단어와 민감한 표현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말을 자르지 않았다. 나름대로 각자의 논리를 최대한 펼 수 있도록 했다.
편집과정은 힘들다. 전혜린 온스타일 채널팀장은 "첫 회에서 아이돌 팬덤 문화를 얘기했다가 엄청난 후유증을 앓았다"며 "생각지도 못한 직격탄에 제작진은 편집에 더 심사숙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연진은 모두 "더 뜨겁고 세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화제가 된 이여영은 "첫 회를 보니 생각보다 세지 않더라"며 아쉬워했다. 이지혜도 "더 뜨거워도 될 듯하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출연자에 대한 비방이나 악성 댓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어 보였다. 김숙은 "15년 전 KBS2 '개그콘서트'의 '따귀소녀'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하자, 이여영이 거들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뛰어난 브랜드는 탄생할 수 없을 겁니다."
"여성예능의 '롤모델' 되고파"
‘뜨거운 사이다’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여자들이 성역을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통쾌하다는 반응과 함께, 편협하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지혜는 "한 회 방송이 나갔을 뿐인데 온갖 비난이 쏟아지니 어디에 맞춰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숙은 “‘뜨거운 사이다'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10개 더 있었으면 한다”며 “그러면 말의 수위를 조절할만한 비교대상이 있으니 조심할 텐데”라고 여성토크쇼가 전무한 상황을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끼리 팟캐스트를 하나 만들자"고 제안까지 했다. 직설적인 발언이 걸러진 방송으로 비난 받을 바에는 팟캐스트에서 눈치보지 말고 실컷 얘기 해보자는 의미다.
‘뜨거운 사이다’의 문신애 PD는 "사회 이슈를 얘기하는 데 있어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지금까지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여성토크쇼는 예능국에서 금기시하는 포맷이다. 여성 예능프로그램의 성공 사례가 거의 없고, 유재석급의 여성 예능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방송국 예능국 조직상 여성 예능에 대한 이해나 관심을 바라는 것도 무리였다. 이영진은 "일단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 없다"며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관대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예능 한계 극복해야 장수
김숙은 '뜨거운 사이다'에서 '숙스타'로 불린다. JTBC '님과 함께- 최고의 사랑'에서 보여준 '가모장' 이미지로 인기 연예인이 되더니 최근 방송된 여성 예능프로그램의 중심이 됐다.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2016) 시즌2까지 출연했고,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의 MC로 1년 넘게 활약 중이다. 김숙 스스로도 "버틴 것 자체가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고 말한다.
예능을 넘어 시사, 교양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뜨거운 사이다'가 장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시청자층을 골고루 끌어안아야 장수 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뜨거운 사이다' 제작진은 "남녀 편가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밝혔다. 여성 출연자들로만 이루어진 토크쇼이기 때문에 여성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 회 주제 선정부터 우려를 낳았다. 방송에서 ‘여성예능이 없는 이유’를 논하는 것부터가 "남녀 편가르기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방송에서 6명의 출연진은 "남성중심의 방송환경"을 집중적으로 지탄했다. 이 때문에 여성토크쇼가 자칫 불만만 제기하는 피해의식 표현의 자리로 변질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경남 대중문화평론가는 "뜨거운 사이다'가 여성토크쇼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선 사회적 불만을 토로하는 여성들의 성토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 평론가는 “각계각층의 전문직 여성들로 구성된 만큼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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