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권한을 가진 제헌의회 출범 이후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반정부 세력이 군 기지를 공격하는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정국 안정을 위한 내부 시스템 마련이나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내전 발발 등 전면 충돌은 물론, 유혈 분쟁 장기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이날 새벽 베네수엘라 제3의 도시인 북서부 발렌시아에서 무장한 소규모 집단이 푸에르테 마라카마이 군 주둔지를 급습했다. 격렬한 총격전 끝에 2명이 사살되고 탈영 군인을 포함한 8명이 붙잡히면서 무장 공격은 진압됐다. 군은 성명을 통해 “1명을 제외한 나머지 범인들은 군복을 입고 위장한 민간인으로 판명 났다”며 “정부를 겨냥해 준 군사조직이 저지른 테러”라고 밝혔다. 헤수스 수아레스 초우리오 육군사령관은 “범죄자들은 제국주의와 결탁한 용병”이라며 미국 배후설도 제기했다.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군 기지 공격을 암시하는 동영상이 떠돌기도 했다. 영상에서 자신을 국가수비대 장교 출신로 소개한 후안 카를로스 카구아리파노는 군복 차림 남성 10여명을 대동한 채 “이번 공격은 쿠데타는 아니며 헌법질서를 재건하려는 합법적 반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4년 국가수비대에서 해임된 인물로 알려졌다.
이날 충돌이 계획된 군사 행동으로 드러나면서 대화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제헌의회는 전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반기를 든 대표 인사인 루이사 오르테가 검찰총장을 해임하고, 지난주 전격 체포한 유력 야권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와 안토니오 레데스마를 다시 가택연금하는 등 대규모 숙청을 통한 개헌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더 이상 평화적 저항으로는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진 만큼, 무력으로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정부 세력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앞서 12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도 화염병과 사제 무기가 등장하는 등 갈수록 폭력 양상이 두드러졌다.
이미 저강도 수준의 내전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분쟁연구단체 국제위기그룹(ICG)의 필 건슨 수석연구원은 “폭력이 계속 반복될 경우 정치적 갈등에 머물지 않고 낮은 강도의 내전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시리아처럼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이념ㆍ종교가 위기를 부른 근본 원인은 아니어서 전면전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검찰총장 해임에서 보듯, 베네수엘라 정부가 마지막 보루인 사법시스템마저 장악한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는 지하로 숨어 들 수밖에 없다”며 “내전ㆍ쿠데타와 같은 결정적 국면전환이 없는 한 빈곤과 폭력이 심화하는 악순환만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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