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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중동] 짧았던 ‘아랍의 봄’… 폐허 속에도 꽃은 다시 필까

입력
2017.07.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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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시작됐던 민주화 물결

지금은 혁명의 깃발들 사라져

이집트 엘시시, 시리아 아사드 등

독재ㆍ권위주의 권력 정책이

IS와 같은 극단주의 부추겨

극복 힘든 갈등에 신음하는 중동

자유ㆍ해방 요구는 숨쉬고 있어

2011년 2월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모여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카이로=AFP 연합뉴스
2011년 2월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모여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카이로=AFP 연합뉴스

중동의 봄은 짧다. 해양성 기후와 사막 기후가 교차하는 이 지역은 봄과 가을이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용혜원),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안도현) 같은 봄날의 노래는 없다. 히브리 성서에서도 계절로서의 봄과 가을은 언급조차 없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으로 아랍 지역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혁명의 물결이 일어난 지 6년이 지난 지금, 해당 국가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독재ㆍ권위주의 권력들이 추진하는 퇴행, 여러 정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혁명 과정, 그 틈바구니를 뚫고 올라와 골칫거리로 급부상한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야기하는 지정학적ㆍ종파적 문제가 그것들이다.

아랍의 봄에 직면한 독재ㆍ권위주의 정권들은 혁명 초기 민심의 동요를 의식해 약간의 민주적 절차 도입을 약속했지만,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국왕의 특권과 독재 체제 유지에 힘을 쏟아부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은 장기 집권하던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이후 압델 파타 엘시시 장군이 투표로 선출된 무슬림 형제단의 새 정부에 반대해 2013년 7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고, 엘시시 정부는 어떠한 특권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군부의 이빨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부자세습 국가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평화적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잔인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사드 정권은 권력에 대한 어떠한 문제 제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독재 권력의 속성을 재확인시켜줬다.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 지정학적 긴장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억압에서 벗어난 분파의 저항으로부터 비롯된 두 종파 사이의 대립 양상은 각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종주국으로 삼아 모든 반대세력을 악마화해 버렸다. 또한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탄압을 자행함으로써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종파 간 갈등은 각국 정권이 반혁명 전략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독재ㆍ권위주의 체제들은 내부적으로 종교적 극단주의를 공격하고, 외부적으로는 극단주의가 강화되도록 이중적인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는 아랍의 봄에 대항하여 수많은 이슬람주의자를 감옥에서 석방하고, 다른 반대파 그룹의 투사들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예멘 정부는 알카에다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다른 편에서 시아파 반군 후티족을 이란의 사주를 받는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걸프만의 군주국들은 IS를 가장 나쁜 적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자국의 영토에서 활동하는 종교 조직들이 영토 밖의 무장 이슬람 단체에 재정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지난달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등 7개국이 취한 카타르에 대한 극단적인 단교 조처는 이런 배경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들 국가에 있어 지하드(이슬람 성전)의 위협은 모든 민주주의적 개혁을 봉쇄하기 위한 핑계를 제공해 주고 있는 셈이다. 모로코의 작가 물레이 히샴은 “현재 아랍의 거리에서 혁명의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혁명 과정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민중이 요구한 문제들이 해소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랍국가 대부분의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경제 역시 무기력하며, 행정 또한 만성적 부패로 비효율적이고 교육 시스템 개선은 이뤄지지 않는 등 민간 분야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들은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IS의 출현은 단순히 중동 내 하나의 잔인한 세력이 탄생했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IS는 소수의 메시아 그룹과 차별받는 부족 공동체, 이를 지지하는 전 세계의 외로운 늑대들의 네트워크가 됐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다. 서구 사회는 예측 불가능한 불특정 테러에 전전긍긍하면서도 IS를 쉽게 뿌리 뽑지 못할 것이다.

아랍의 봄은 매우 짧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 국민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열망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요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짧았던 아랍의 봄을 통해 그들이 학습한 것은 사회적ㆍ정치적 변화가 일회성 시위가 아닌 정치적 역량을 갖춘 지속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일 테다. 반혁명적 퇴행을 계속할지, 점진적인 개혁에 착수할 것인지, 새로운 폭동이 터지기를 기다릴지는 지도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그 짧은 봄 중동의 삭막한 사막에서도 들꽃을 피우는 대지의 생명력은 놀랍도록 강하기에,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한 중동에서 민주주의 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최창모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ㆍ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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