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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바엔 내가 쓴다" 지하철 시(詩) 백일장이 열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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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바엔 내가 쓴다" 지하철 시(詩) 백일장이 열린 까닭

입력
2017.07.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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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스크린도어 시(詩) 공모전이 시작되자 시민의식을 지적하는 해학 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위터 캡쳐
서울시 스크린도어 시(詩) 공모전이 시작되자 시민의식을 지적하는 해학 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위터 캡쳐

“임산부 전용석의/저 아저씨/몇 개월이세요”

“급하다는 이유로/먼저 타지 마라(중략)/너는 한번이라도/허무하게 지하철을 놓친 적이 있느냐”

5줄의 짧은 시가 임산부 전용석을 차지한 지하철 이용객의 부족한 시민의식을 ‘저격’한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를 패러디한 시는 ‘승객이 다 내린 후 탑승하라’는 지하철 에티켓이 지켜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서 열린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詩) 백일장’에서 보이는 ‘풍자시’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던 김모군이 사고로 숨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을 기억하는 내용을 담은 시도 주목을 받았다. 트위터 캡처
지난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던 김모군이 사고로 숨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을 기억하는 내용을 담은 시도 주목을 받았다. 트위터 캡처

백일장에서는 지난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다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도 주목을 받았다. “이 문에서/스무살 청춘이 죽었다/점심에 먹을/사발면 하나 남기고”라는 내용의 시는 지하철과 연관된 청년 노동의 현실을 지적해 1,000명이 넘는 이용자에게 공감을 받았다.

온라인 상의 '스크린도어 시 백일장'은 서울시가 지난 12일부터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릴 시민 시 100편을 공모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각박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시"를 선정해 스크린도어에 게시하고 있다. 심사위원은 10인 이내 문학 관련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2015년 8월을 기준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9호선, 분당선에 있는 4,841개 스크린도어에 걸린 시들이 시민을 만나고 있다.

지난 1월 딸을 성적 대상으로 봤다는 비판을 받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줌인'.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 해당 작품은 논란이 커지자 철거되었다. 전진욱 시인 블로그
지난 1월 딸을 성적 대상으로 봤다는 비판을 받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줌인'.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 해당 작품은 논란이 커지자 철거되었다. 전진욱 시인 블로그

그러나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는 때때로 시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시가 게시돼 여러 번 논란이 됐다. 선정적이거나, 공공성을 훼손하는 시가 민원을 받고 철거되기도 했다. 지난 1월 철거된 시 ‘줌인’은 아버지가 출가한 딸의 연락을 받고 회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딸을 “첫사랑 애인 같다”고 묘사한 데 이어 딸 사진을 “엄지와 검지 사이/쭈욱 찢어지도록 가랑이를 벌린다”는 내용에서 딸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목련꽃 목련꽃/예쁘단대도/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목련송이만 할까”

지난해에는 시 ‘목련꽃 브라자’가 같은 이유로 민원이 들어와 철거됐다. 미성년자도 이용하는 지하철인 만큼 성적인 묘사가 드러난 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당시 시민 의견이었다. 또 다른 시 ‘몹쓸 인연에 대하여’는 “시간을 갉아 먹는 암세포를/고귀한 인연이라 생각해본 적 있는가” 등의 암세포 묘사가 암 환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서울시는 해당 시를 철거했다.

SNS 백일장에 출품된 시들은 지하철 이용 시 불거지는 부족한 시민의식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다. 트위터 캡쳐
SNS 백일장에 출품된 시들은 지하철 이용 시 불거지는 부족한 시민의식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다. 트위터 캡쳐

위 사례처럼 ‘공감 불가’인 시를 볼 바엔 차라리 부족한 시민의식을 지적하며 공감을 얻겠다는 게 SNS 풍자 시의 창작배경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시는 스크린도어 시에 작고한 시인의 작품부터 외국의 유명한 시까지 게시 대상의 폭을 넓혔으나 현재 남아있는 스크린도어 시 중에서도 문학적 가치가 떨어지거나 공공성을 훼손하는 시가 있다는 의견은 남아있다.

서울시는 철저한 심사로 논란의 여지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문학작품 특성상 해석의 여지가 넓어 논란이 생기는 것 같다”며 "서울시는 공공성을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작품이 있으면 즉시 철거를 하고 있고, 이번 공모전에도 심사를 철저히 해 시민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시들을 걸러낼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빛나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제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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