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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사진관은 죽지 않았다… 아주 특별한 사진관

입력
2017.07.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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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계동 ‘물나무 사진관’의 아날로그 사진. 화질보다 중요한 건 사진의 촉감과 기억일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계동 ‘물나무 사진관’의 아날로그 사진. 화질보다 중요한 건 사진의 촉감과 기억일지 모른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아담한 사진관을 떠올려 보자.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고스란히 기록된 애틋한 곳. 동네 사진관은 그런 장소였다. 돌 사진부터 영정 사진까지, 보통 사람의 인생을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아날로그의 퇴락은 사진관을 집어삼켰다. 디지털 기술은 사진을 수없이 찍고 지우고 보정하고 공유할 자유를 줬고, 사진관은 20세기의 유물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사진관은 죽지 않았다. 빛나는 아이디어를 앞세운 동네 서점이 암울한 출판계의 미래를 밝혀 나가듯, 사진관도 회생을 시작했다.

아날로그 사진의 미덕

물나무 사진관의 흑백 사진. “독보적으로 한국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는 김현식 대표가 한지로 족자를 표현했다.
물나무 사진관의 흑백 사진. “독보적으로 한국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는 김현식 대표가 한지로 족자를 표현했다.

평생 단 한번이라는 결혼 사진 찍을 때, 입사 지원서에 붙일 증명사진 찍을 때, 큰 결심 하고 가족 사진 찍을 때. 디지털 시대의 인류가 사진관에 가는 건 귀하게 쓸 사진을 멋지게 다듬어 주는 전문가의 솜씨가 필요해서다.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완성된다. 재촬영도, 수정도 불가능하다. 그런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관이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 ‘물나무 사진관’. 사진 한 장에 3만원, 한 팀이 두 장까지만 찍을 수 있는데도 주말이면 사람들이 종종 줄을 선다. 한정판 사발면을 내주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비유할 수 있을까.

폴라로이드사는 2002년 도산했고, 필름은 최근 생산 중단됐다. 사진 기자 출신 김현식(48) 대표는 세계 곳곳을 수소문해 단종된 후지 FP-3000B 흑백 필름 2,400여장을 구했다. 한 장에 만원이 넘는 가격을 치렀다. 필름을 아껴 쓰는 것도, 사진값을 비싸게 받는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폴라로이드 필름을 대형 필름 카메라에 넣어 찍는다. 다시 인화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흑백 사진이다. 색감은 아련하고 사진 테두리엔 기묘한 얼룩이 남는다.

물나무 사진관의 아날로그 즉석 사진. 폴라로이드 흑백 필름을 대형 카메라에 넣어 찍는다.
물나무 사진관의 아날로그 즉석 사진. 폴라로이드 흑백 필름을 대형 카메라에 넣어 찍는다.

즉석 사진의 속성 상 완벽한 모습이 찍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폴라로이드 사진 효과가 필요하다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사진관을 찾는 건 왜일까. 김 대표는 아날로그의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품질만 따지면 아날로그 사진이 디지털 사진을 따라 잡을 수 없지요. 아날로그 사진에는 찍은 그 순간부터 나와 함께 시ㆍ공간을 공유하며 쌓아 가는 존재라는, 실물로서의 미덕이 있습니다. 반면 디지털 사진은 잘 나온 순간 만족을 느끼면 그만이지요.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 순간 전통적 의미의 사진은 사망했는지도 몰라요.” 네모난 종이에 인화된 사진을 만지고 흔들고 보관하는 경험, 사진을 찍는 과정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있었다는 얘기다.

물나무 사진관은 요즘 유행인 ‘자화상 사진’의 원조 격이다. 3년 전 자화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카메라와 조명뿐이다. 카메라 뒤엔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다. 거울 속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 진짜 내 모습이 나타났다고 여겨지는 순간 리모콘으로 셔터를 누른다. 펑펑 울면서 나오는 사람이 많다. 자기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촬영을 포기하기도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나다운 나를 기억하려는 사진이니까 멋지게 나올 필요가 없죠. ‘누구의 딸이자 친구’‘어느 회사의 직원’ 같은 관계를 전부 벗고 나를 객관화시켜 보는 거예요.”

잡지 사진 같은 ‘셀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화상 스튜디오’ 조경민 대표의 셀피. 카메라 리모콘을 누르고 셔터가 작동하기 전 3,4초 동안 포즈를 취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화상 스튜디오’ 조경민 대표의 셀피. 카메라 리모콘을 누르고 셔터가 작동하기 전 3,4초 동안 포즈를 취했다.

‘자화상’을 내건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화상 스튜디오’. 자화상 사진을 보다 가볍게 찍을 수 있다. ‘자기 성찰’ 같은 무거운 얘기가 껄끄러운 이, 감각적 셀피를 부담 없이 찍고 싶은 이, 사진 작가 앞에 서는 게 부끄러운 이에게 최적화된 젊은 사진관이다. 사진관 운영 6개월 차인 조경민(32) 대표는 “제일 예쁘고 멋진 모습을 끌어 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①잡지나 광고 사진 같은 예시를 참고해 콘셉트를 상의한다. ②조명과 구도를 맞춘다. ③조 대표는 자리를 뜨고, 혼자 스튜디오에 남은 손님이 리모콘을 누른다. ④셔터가 눌리기 전 3,4초 동안 포즈를 잡는다. ⑤조 대표가 스튜디오 밖의 컴퓨터에 실시간 전송되는 사진을 확인하면서 시선과 표정 등을 조언하며 개입한다. ⑥한시간 동안 무제한 촬영하는 사진 중 네 장을 골라 인화한다. 비용은 5만원. 지하철 역사의 무인 증명사진 기계보다는 비싸고 전문 사진관보다는 싸다.

자화상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이바미씨. 사진 작가가 없는 곳에서 부끄러움을 제거한 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배우한 기자
자화상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이바미씨. 사진 작가가 없는 곳에서 부끄러움을 제거한 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배우한 기자

셀피는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데, 왜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일까. 김 대표는 “기술로 평준화된 디지털 사진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조명”이라며 “그걸 아는 20~30대 여성들이 주로 찾아 온다”고 했다. 이바미(25)씨가 자화상 사진 촬영에 도전했다. “긴 머리를 소품처럼 이용해요”“오른쪽 얼굴이 더 예쁘니까 머리를 왼쪽으로 돌려요”“팔은 이런 각도로 자연스럽게 접어요”“멍하게 있지 말고 예쁜 이미지를 떠올려요” 조 대표의 조언에 이씨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씨는 “카메라와 나만 있는 공간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순간을 포착해 기록하는 게 즐거웠다”고 했다.

반려동물 전용 사진관

반려동물 사진관 ‘펫 더 제인 스튜디오’의 사진.
반려동물 사진관 ‘펫 더 제인 스튜디오’의 사진.

성장 앨범은 아기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려 동물도 성장 앨범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다. 반려동물을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닌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경기 용인시 청덕동의 ‘펫 더 제인 스튜디오’는 반려동물 전용 사진관이다.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고슴도치, 뱀, 앵무새, 토끼도 카메라 앞에 섰다.

비용은 싸지 않다. 기념일 사진은 5만원, 1년 동안 분기마다 찍는 성장 앨범 사진은 45만원, 주말 야외 출장 사진은 65만원이다. 최수영(38) 대표는 “반려 동물이 미용하는 날마다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며 “매달 100마리 이상을 촬영한다”고 했다.

사진 작가는 말 통하지 않는 동물과 어떻게 교감하는 걸까. “동물이든 아기든, 예쁜 표정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동물의 기분이 좋아야 하고요. ‘앉아!’‘일어나!’ 같은 말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개는 그나마 수월해요. 고양이는 절대 말을 듣지 않아 힘들죠.” 반려동물은 신생아 못지 않게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촬영하는 동안 소음도 낯선 생물체도 등장해선 안 된다. 반려동물 사진관이 대개 한적한 곳에 있는 이유다.

반려동물도 성장 앨범 사진을 찍는다. 펫 더 제인 스튜디오 제공.
반려동물도 성장 앨범 사진을 찍는다. 펫 더 제인 스튜디오 제공.

지난 2일 4개월 된 페르시안 고양이 성장 앨범을 찍은 정의근(34)씨의 말. “동물은 사람보다 수명이 훨씬 짧잖아요. 함께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요. 집에서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어차피 돈이 많이 들어요. 앨범 비용을 더한다고 해서 큰 차이는 아니죠. 사료값이 조금 더 들었다고 생각할래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도엽(경희대 정치외교학과 3)ㆍ구단비 인턴기자

반려동물과 찍는 가족 사진. 펫 더 제인 제공
반려동물과 찍는 가족 사진. 펫 더 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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