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불과 사흘 만에 북한이 다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칙적으로 합의된 단계적ㆍ포괄적 북핵 접근법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자 핵ㆍ미사일 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북한이 4일 평안북도 방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40여분을 날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떨어졌다. 비행거리는 930㎞ 이상, 최대고도는 2,800㎞ 이상으로 각각 추정됐다. 지금까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중 가장 높은 고도에 도달했고, 비행거리도 길어 정상각도로 발사했다면 7,000여㎞를 날아 미국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ICBM)급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도 ‘특별중대발표’를 통해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 14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며 “정점고도 2,802㎞까지 상승해 933㎞의 거리를 비행했다”고 밝혔다. 북한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시험발사가 마감단계”라고 했던 ICBM 개발이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ICBM 발사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바 있어 북한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북핵 정국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북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는 것은 물론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한반도 문제에서의 주도적 역할’ ‘남북대화 추진’등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청와대는 “위기상황이어서 더욱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으나 이런 인식이 얼마나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을지, 또 북한의 확고해 보이는 핵ㆍ미사일 개발 의지와 걸맞은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도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제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강력한 압박이 우선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정상회담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중국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불만을 털어놓으며 대북 독자 압박 의사를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 고위관리를 인용해 “지난달 미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 이후 ‘외교적 관여’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려하는 조치가 아니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렵게 도출한 ‘압박ㆍ대화 병행’은 북한의 최소한의 호응을 전제해야 가능한 정책이다. 핵 동결로 대화 문턱을 낮추고 당근을 아무리 제시해도 북한이 대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춘 이번 도발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들여 마련한 합의에 침을 뱉은 것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5일부터 시작되는 독일 방문에서 대북 구상을 담은 ‘베를린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무너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조치 등이 언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상대방인 북한이 노골화한 속셈을 외면한 채 ‘희망사항’에 기대는 대북 유화책은 좀처럼 현실성을 띠기 어렵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문 대통령의 ‘달빛정책’이 헛되지 않으려면 냉정한 대북 인식이 선행해야 함을 일깨우고도 남는다. 비상한 안보 경각심과 빈틈 없는 대북 군사대비 태세가 한결 긴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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