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전후해 김일성이 남북 정상회담을 희망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에 응할 의향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미국이 공동성명의 전 과정을 손바닥 보듯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희박한 남북대화 의지를 확인, 분단 이후 최초 남북대화의 실패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2일(현지시간) 미 중앙정보국(CIA)이 기밀 해제한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일일 정보브리핑’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CIA는 전 세계에 퍼진 첩보망과 국무부 자료 등을 취합, 매일 미 대통령에게 미국의 국익이 걸린 주요 지역의 정세를 보고하고 있다.
최근 ‘1급 비밀’(Top Secret)에서 해제된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72년 5월2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과 이후 5월말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의 서울 방문 등 일련의 남북접촉 과정과 논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비밀 남북접촉 정보는 필립 하비드 주한 미국 대사가 직접 박 대통령과 이 부장을 만나 내용을 청취한 것 이외에도, 한국 정부 내부의 다양한 정보원을 토대로 수집됐다.
CIA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에 응한 배경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체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과 통일에 대한 의지보다는 북한 김일성의 정치공세를 일시적으로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대화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CIA는 닉슨 대통령에게 ‘박 대통령이 하비브 대사와의 면담에서 ▦이후락 부장을 추가로 북한에 보낼 일이 없을 것 ▦공동성명을 통해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는 고위급이 배제된 실무진 위주로 구성되며 그 기능도 남북적십자대화 지원과 비무장지대(DMZ) 충돌 방지 등에 머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보고했다.
CIA는 일련의 정보분석을 토대로 공동성명이 발표되자마자 남북접촉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CIA는 발표 다음날인 7월5일자 브리핑 자료에서 “전날 발표된 공동성명 내용을 분석한 결과, 남북 대화를 고위급 정치대화로 발전시키려는 평양의 시도를 한국이 효과적으로 저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박 대통령이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한 내부여론을 분열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군 철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김일성이 바라던 남북 정상회담에 나설 의향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CIA의 예상대로 한국과 북한은 공동성명 이후 3개월가량 지난 뒤 각각 ‘10월 유신’(10월17일)과 ‘사회주의 헌법’ 채택(12월) 등 대결구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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