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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은도끼' 우화에 담긴 진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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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은도끼' 우화에 담긴 진짜 의미는?

입력
2017.06.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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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를 들고나와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묻는 산신령의 정체는 사실 헤르메스다. 그는 제 깜냥에 맞는 권력만 받으려는 이에게 오히려 최상의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민음사 제공
금도끼를 들고나와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묻는 산신령의 정체는 사실 헤르메스다. 그는 제 깜냥에 맞는 권력만 받으려는 이에게 오히려 최상의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민음사 제공

별별명언

김동훈 지음

민음사 발행ㆍ312쪽ㆍ1만5,500원

쇠도끼만이 내 도끼라 정직하게 말한 나무꾼이 금도끼, 은도끼까지 얻었다는 ‘금도끼, 은도끼’ 얘기는 들어봤을 만하다. 그런데 나무꾼을 시험에 들게 한 산신령이 사실 신들의 전령으로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헤르메스였다는 얘기는 낯설다. ‘금도끼, 은도끼’는 흔히 전래동화로 알려졌지만, 전래된 시점은 1895년에 불과하다.

이 해 신학문 교육을 위해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교과서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에는 7편의 이솝 우화가 실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금도끼, 은도끼’다. 이솝 우화는 크게 그리스계 우화와 라틴계 우화로 분류되는데, ‘금도끼, 은도끼’ 얘기는 양쪽에 다 있을 뿐 아니라 버전도 다양하다. 그러니 ‘금도끼, 은도끼’란 이렇게 전해 내려오던 이솝 우화를 우리 실정에 맞춰 바꾼, 일종의 ‘번안 동화’인 셈이다.

‘금도끼, 은도끼’ 얘기에는 이것 말고도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도끼’라는 상징이다. 서양에서 도끼는 권력을 의미한다. 고대 로마 공화정이 도끼와 나무다발을 한데 묶은 상징물로 집정관의 권위를 표현한 이래 쭉 이어진 전통이다. 권표(權標)라고 번역되는 이 물건을 로마인들은 파스케스(Fasces)라 불렀다. 후일 전세계를 파탄에 빠뜨리는 파시즘(Fascism)이라는 단어도 여기서 나왔다. 동양에서도 매한가지다. 도끼를 뜻하는 부(斧)자는 아버지(父)가 고기를 근(斤) 단위로 잘라 분배하는 모양새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연애지침서들은, 여성의 환심을 사려는 남성들에게 일단 먼저 고기를 먹이라고 코치해준다. 단백질 공급능력은, 가부장적 권위의 토대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금도끼, 은도끼’ 얘기는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전래동화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모종의 정치적 함의를 가지게 된다.

산신령이든, 헤르메스든 금도끼, 은도끼를 가지고 나와 네 도끼냐고 묻는 행위 자체는 그와 같이 강력한 권력을 쥐겠느냐고 물어본다는 의미다. 나무꾼이 거절하고 쇠도끼만 받는 것은, 자신의 깜냥을 넘어서는 권력은 사양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자신의 깜냥을 정확히 알고 이를 거부하는 이에게 오히려 ‘쇠’를 넘어선 ‘금’과 같은, ‘은’과 같은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이솝우화 버전에서는 헤르메스가 다양한 종류의 도끼를 나무꾼에게 가져다 보이기 위해 강물 아래로 반복적으로 들어갔다 올라오는 것을 두고 ‘솟아 올랐다’고 표현한다. 강 밑바닥까지 내려가 닿았다가 다시 박차고 오른다는 얘기는 ‘기적’을 의미한다.

종합하자면, 절망 속에서 기적과도 같은 구원의 손길이 뻗쳐왔을 때 덥석 받지 말라는 얘기이자, 덥석 받는 사람은 두 번 볼 것도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자기 PR시대, 정치 얘기만 나오면 ‘권력의지’ 같은 단어만 나도는 시대에 “나는 그 권한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나의 것만 허락해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야 말로 진정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빈센초 카무니치가 그린 ‘카이사르의 암살'. 그는 공화주의자들의 칼날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이 또한 주사위는 던져졌기 때문이다.
빈센초 카무니치가 그린 ‘카이사르의 암살'. 그는 공화주의자들의 칼날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이 또한 주사위는 던져졌기 때문이다.

‘별별 명언’은 그리스ㆍ로마 고전과 신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우리 귀에 익은 명언의 뜻을 다시 한 번 풀어낸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 카이사르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명언 21개를 다뤘다. 가볍게 읽어 내릴 것 같지만 뜻밖의 묵직함도 있다.

‘금도끼, 은도끼’에 이어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는 말 또한 그렇다. 이 말은 흔히 어느 한 대목에 집중해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정말 이런 뜻 뿐일까.

이 말은 로마 최고 시인으로 꼽히는 오비디우스가 친구에게 보낸 글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변경 토미즈(현재 루마니아의 콘스탄차) 유배형에 처해졌다. 죄목은 풍기문란이었지만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로마 제정 초기 대역죄와 간통죄가 남발되는 등 풍속사범에 대한 대대적 척결이 이뤄진다는 점을 들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집권 초기 황실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역죄ㆍ간통죄라는 죄목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절대권력자들은 늘 노래가사, 치마길이 같은 ‘풍속’에 깊은 관심을 갖는 법이기도 하다. 오비디우스는 그 과정의 희생양이었다.

'카르페 디엠'이란 말을 널리 알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오늘을 즐기라'는 해석은 너무 단편적이다.
'카르페 디엠'이란 말을 널리 알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오늘을 즐기라'는 해석은 너무 단편적이다.

억울해 미칠 것 같았던 오비디우스는 당연히 유배형이 풀려 로마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고 6년이란 세월이 흘러가자 포기했다. 최고 시인이자 당대의 ‘댄디 보이’였던 오비디우스는 로마에서 입던 옷을 버리고 현지 주민인 게타이족이 입던 가죽옷을 걸쳤다. 라틴어를 버리고 현지어인 게타이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 게타이족과 함께 싸우기도 했다. 이 과정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오비디우스가 쓴 표현이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모진 운명에 대한 깊은 회한, 억울함, 분노 같은 것이 담긴 표현인 셈이다.

21가지 명언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고픈 것은 결국 ‘변신’이다. “명언의 자극은 우리 맘에 울림이 되고,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나의 변신을 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명언이 ‘~하라’는 식으로 표현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서양 고전학자라곤 하지만 동서양,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풍성한 한 상 차림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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