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베트남 전쟁 관련 기밀 문건을 공개한 폭로자와 반전(反戰) 시위대에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18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은 워터게이트 사건 45주년 특집 보도로 워터게이트 특별검사팀의 기록을 최초 공개했다. 여기에는 닉슨 행정부의 공작원들이 1972년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 앞 반전 시위대를 향한 폭력을 모의했다는 증거가 들어 있다.
문건에 따르면 닉슨 대통령의 공작원들은 집회에 참석한 대표적 반전 운동가 대니얼 엘스버그를 폭행하려는 계획을 짰다. 엘스버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과정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1971년 뉴욕타임스(NYT)에 유출해 반전 여론 확산에 앞장섰던 군사분석가다. 문건에는 주공격 목표가 “장발의 시위자들, 특히 엘스버그”라고 나와 있다. 심지어 “단순히 엘스버그를 호되게 두들겨 패는 것”이 목표 중 하나라고 적혀 있다.
NBC는 당시 닉슨 정부가 엘스버그를 옥죄기 위해 그를 도청하고 의료기록을 훔치는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 폭행 계획 또한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엘스버그는 회고록을 통해 “1972년 5월 당시 백악관이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쿠바계 CIA ‘요원’들을 불러 와 나를 무력화하기 위해 참석한 집회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공작원들은 찰스 콜슨 당시 백악관 특별보좌관의 명령을 받았으며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몰래 설치하다 적발됐고 정신과 진료 기록을 훔쳐 엘스버그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려 했다. 당시 폭행 음모가 공개되지 않은 것은 특검팀이 법정에서 이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콜슨 전 보좌관 역시 의료기록을 훔친 것은 인정했지만 폭력 음모는 부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에는 닉슨 역시 이 공격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당시 닉슨의 최측근이었던 밥 홀더먼 백악관 수석보좌관과 존 에릭먼 내정담당보좌관이 “후에 정부와 연관됐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닉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계획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에릭먼이 “쿠바계 민간인(으로 위장한 공작원)을 끌어들여 시위대를 자극해 폭력을 휘두르도록 하자”고 제안하자 닉슨은 “캠페인 활동의 일환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18페이지짜리로 당시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보인 닉 애커먼이 1975년 6월 5일 공화당 선거전략가였던 로저 스톤과의 인터뷰 내용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 애커먼은 18일 문건 공개 직후 MSNBC에 출연해 “실제로 이 작전은 수행되지 못했다. 어떤 이유로 이들 요원이 엘스버그에게 손을 대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사람들은 워터게이트를 민주당 본부에 침입한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문건 작성의 증인으로 지목된 스톤은 애커먼과 함께 출연해 반전시위에 맞선 친정부 데모에 참가할 젊은 공화당원을 모으는 것을 도운 것은 맞지만 엘스버그에 대한 공격 음모는 몰랐다고 말했다. 또 그는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닉슨을 부추겨 엘스버그를 ‘처리’하는 것에 집착했다고 주장했지만, 애커먼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구단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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