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리 슈틸리케 감독/사진=KFA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유효슈팅 '0개'의 졸전이 빚어진 이라크와 평가전이 끝나고 얘기를 나눈 한 축구 해설위원은 카타르전에 승산이 있겠냐는 물음에 "허허" 웃은 뒤 정색하며 "당연히 승산이 있어야죠"라고 답했다. 비겨도 안 되고 반드시 이겨야 될 경기라는 의미였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 축구에 그만큼 중요한 경기였지만 이번에도 대표팀은 모든 축구인과 팬들의 바람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조별리그 A조 카타르와 원정 8차전에서 2-3으로 패했다.
1984년 싱가포르 아시안컵(0-1 패) 이후 33년 만에 카타르에게 진 한국은 승점 13(4승 1무 3패)에 묶였다. 전날 이란이 아시아 최종 예선 출전국으로는 처음으로 본선 행을 결정지으며 3위 우즈베키스탄(4승 4패ㆍ승점 12)을 꺾어준 덕에 가까스로 2위를 지킨 꼴이 됐다. 대표팀에게는 이제 단 2경기(8월 31일 이란 홈ㆍ9월 5일 우즈베키스탄 원정)가 남았다.
경기 내용은 결과만큼이나 낙제점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줄곧 외치던 점유율 축구는 상대 전방 압박에 무용지물이 됐고 패스 세밀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일대일 경합 과정에서 선수들은 계속 볼을 뺏기기 일쑤였다. 수비진은 패스 몇 번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이근호(32ㆍ강원FC)의 말처럼 간절함도 정신력도 보이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운명의 카타르전을 앞두고 슈틸리케를 한 번 더 신임하기로 한 대한축구협회는 코치진을 손보고 조기 소집을 하고 평가전도 치르는 등 나름 배수진을 쳤지만 경기력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돌아보면 중국과 홈 1차전부터 8경기 과정 내내 실망스러운 모습만 반복했다. 이번 대회 원정 1무 3패 중 2패가 최하위권의 중국과 카타르라는 점에서 자괴감을 더했다. 더 이상의 인내심은 무의미하다고 할 만큼 슈틸리케의 지도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이천수(36) JTBC 축구 해설위원은 "상대가 오히려 몸을 던지고 자신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마음껏 했다. 뭔가 대응이 잘못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정신력ㆍ전술ㆍ전략 등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최악의 경기"라면서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선 "한 번 더 기회를 줬다는 부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이 의심스러운 경기력을 보였다"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준희(47) KBS 축구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간 경기력 향상이 없었다"면서 "위기가 가시화된 것은 작년 10월 이란전 패배였다. 12월 우즈벡전 이후 경질이 논의됐어야 했다. 결국 가장 좋은 연말 골든타임을 놓치고 또 3월은 대안 부재를 이유로 유임된 것이 이 위기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축구협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만약 유임이 된다면 촉박한 준비기간이 주된 이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계자는 "감독 경질은 기본적으로 기술위원회가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상대적으로 여지는 적지만 유임이 된다면 시간적 문제 때문일 것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여러 가지를 검토하겠지만 2개월의 시간이 충분한 건 당연히 아니다. 협회와 기술위는 단순한 사퇴나 경질을 넘어 새 감독 후보를 추려봐야 하는 등 다음 대안까지 생각해야 한다. 기술위 자체에서는 계속 책임 부분을 언급한 이용수(58) 기술위원장의 거취 문제도 함께 걸려있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대한 고민해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은 전반 25분 하산 알 하이도스(27ㆍ알사드)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얻어맞고 끌려갔다. 엎친 데 덮쳐 손흥민(25ㆍ토트넘)은 전반 33분 공중 볼을 경합하다 착지 과정에서 팔뚝을 다쳐 교체됐다. 경기 후 오른쪽 팔뚝(전완골) 골절 판정을 받았다. 후반 들어서도 한국은 6분 만에 상대의 주고받는 패스에 수비진이 가볍게 허물어지며 아크람 아피프(21ㆍ스포르팅 히혼)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0-2로 패색이 짙던 순간 후반 17분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이 지긋지긋한 원정 무득점을 끊는 골을 터뜨렸고 후반 25분 크로스 상황에서 황희찬(21ㆍ잘츠부르크)의 골이 더해져 기사회생하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29분 상대 스루패스 한방에 중앙 수비 라인이 또 무너지며 알 하이도스에게 결승골을 헌납했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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