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11일(현지시간) 실시된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참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세계적인 포퓰리즘 열풍의 일환으로 급부상했던 오성운동이 집권 가능성까지 위협 받을 만큼 졸전을 치르면서 포퓰리즘이 다시금 잦아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성운동 당수 고향에서까지 참패
이탈리아 언론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자체 1,000여곳의 수장을 뽑는 이번 선거 출구조사 결과, 제1야당인 오성운동 후보들은 제노바, 팔레르모, 베로나, 파르마, 라퀼라 등 승리에 대한 기대가 커지던 주요 도시에서 3~4위의 저조한 성적에 그치며 결선 투표(6월 25일)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에서 총 225곳의 도시에서 후보를 낸 오성운동은 파르마에서 3%를 간신히 넘긴 미미한 지지율로 4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베페 그릴로 대표의 고향인 제노바에서도 기존 좌우 진영에 크게 밀리며 3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하는 등 주요 도시에서 극히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참담한 선거 결과로 인해 내년 봄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차기 총선에서 사상 최초로 집권 꿈을 부풀리고 있던 오성운동의 구상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오성운동은 지난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인과 기존 정당에 대한 피로감에 편승, 30대의 여성 정치 신인을 앞세워 수도 로마와 북부의 부유한 산업도시 토리노 등 주요 도시에서 시장을 배출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코미디언 출신의 그릴로가 좌우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비난하며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탈퇴 등을 약속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차기 총선 결과를 가늠할 시험대로 여겨졌던 이번 총선에서 참패함으로써 최근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反) 포퓰리즘 기류를 현실로 증명하는 셈이 됐다. 지난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을 필두로 유럽 각국에서도 포퓰리즘 정당의 돌풍이 거셌으나 최근 들어 프랑스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잦아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실한 지역 정치, 한계로 작용했나
오성운동의 부진은 짧은 역사 탓에 시장에 당선될만한 강력한 후보를 포함한 지역 정치인 네트워크가 광범위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때 오성운동의 대표 주자로 꼽혔으나 그릴로 대표의 독선에 반기를 들며 당에서 쫓겨난 후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해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한 페데리코 피차로티 파로마 시장은 “오성운동은 12명의 로마 시 각료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할 만큼 인력풀이 얕은 정당”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로마 시장으로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가 당선 1년이 지나도록 인사 논란을 겪으며 시 내각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유로화를 도입한 2000년 이래 경제 성장이 거의 멈춘 이탈리아에는 성장률 정체와 높은 실업률, 난민 위기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상존하는 만큼 이번 지방선거 결과만을 두고 오성운동의 국수주의적 기조가 발휘했던 호소력이 수명을 다했다고 결론 내리기는 이르다고 FT는 지적했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 역시 “이번 선거에서는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이 손쉽게 연합체를 구성한 덕분에 오성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며 “하지만 총선 등 더 큰 단위의 선거에서는 기성 정당들의 연합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정치 지형이 좌와 우가 양분하는 기존 양당 체제로 회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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