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자 박찬경의 '세월호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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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자 박찬경의 '세월호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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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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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작가를 개인전 '안녕 安寧 Farewell'이 열리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만났다. 북한산 승가사에 가는 길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작품인 '승가사 가는 길' 앞에서 박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그는 내내 덤덤했다. 세월호, 블랙리스트, 적폐 이야기를 하면서도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말이 빨라지지 않았다. 냉담해서가 아니다. 집요한 회의주의자라서다. “회의적인 것이 희망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박찬경(52). 미디어아트 작가이자 영화감독, 미술 비평가, 전시 기획자, 말하자면 ‘종합시각예술인’인 그를 지난달 25일 만났다. 박 작가의 개인전 ‘안녕 安寧 Farewell’이 열리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다.

박 작가의 국내 개인전은 5년 만이다. 신작 12점 중 그가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은 ‘시민의 숲’. 26분 6초짜리 3채널 비디오ㆍ오디오 작품이다. 가로로 길게 이어 붙인 3개의 흑백 화면은 근ㆍ현대사의 부조리와 슬픔, 연민에 대한 음울한 은유다. 어둡게 우거진 산의 숲이라는 장소와 학생, 할머니, 무녀 등 등장인물의 기이한 행동, 교복, 군화, 해골, 꽃상여 같은 소품은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 괴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와 나홍진의 ‘곡성’을 닮았다. 박 작가도 “공포 영화 같지 않으냐”고 했다.

‘시민의 숲’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한 작품으로 알려져 주목받았다. 박 작가는 “애도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예술 작품의 역할은 사건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세월호만 얘기한 게 아니고 한국전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변의 고비에서 희생되거나 살아남은 이름 없는 시민과 그들에 대한 연민을 담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세월호가 늘 마음에 있었다. 어떤 이는 침묵하고 어떤 이는 분노한다. 어떤 이는 반성하고 어떤 이는 단죄를 요구한다. 무엇이 맞는 태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도 혼란스러웠다. 세월호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를 보여 줘야겠기에 나섰다. 그런 큰일에 대해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에 기다렸다. 근ㆍ현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우리의 집단 무의식을 알레고리와 단서에 담아 보여 주고 싶었다. 실은 겨우겨우 완성했다.”

류효진 기자

그렇다면 왜 ‘안녕’일까. 박 작가는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이자 구시대를 보내는 안녕이고 희망을 말하는 안녕이기도 하다”고 했다. 역시나 희망을 품기 위해 회의하는 작가다. 그는 “지난해 작품을 만들면서 올해도 여전히 박근혜 정부일 줄 알았다. 요즘처럼 밝은 분위기 속에 이번 전시가 어떻게 감상되고 이해될지 감을 못 잡겠다”며 웃었다.

박 작가는 늘 무겁고 불편한 얘기를 한다. “내 성격이 원래 회의적이다(웃음). 회의적인 것이 비판적인 것이고 그것이 결국 희망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작가가 사회 비평을 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예술은 당대의 중요한 문제를 대놓고 얘기해야 한다. 다만 예술가는 비판하고 분노하기만 해선 안 된다. 그건 너무 쉽다. 예술가는 한발 더 나가서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온통 ‘행복해요’ ‘맛있어요’ ‘좋아요’를 외치며 과시하는 데 힘을 쏟으니 안타깝다.”

영화 ‘신도안’(토착 종교)과 ‘만신’(무녀) 등에 이어 박 작가는 이번에도 ‘무속’을 다룬다. ‘시민의 숲’이 그렇고, 무당이 신당을 꾸밀 때 쓰는 금속인 명두(明斗)를 오브제로 한 ‘밝은 별’ 시리즈도 내놨다. 박 작가가 주목하는 건 굿에 담긴 공감과 연대의 효능이다. “최태민 때문에 무속 얘기를 하기 싫어졌다(웃음). 우리 굿에선 온갖 귀신을 불러내 잘 먹이고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타자에 대한 연민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굿에는 엄청난 공동체의 힘이 있다. 또 현란한 기술을 보유한 예술이자 오랜 시간 축적된 민중 문화다. 예술가가 무속에 관심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백남준, 박생광 등도 스스로 무당이라고 생각하거나 무속에 관심이 많았다. 이제 무속을 양지의 문화로 봐야 한다.”

박찬경 '시민의 숲'이 상영되는 국제갤러리 전시실. 국제갤러리 제공

박 작가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2015년 예술영화지원사업에서 배제됐다. 야권 지지자인 박찬욱 영화감독의 동생이고 진보 성향 작가라는 ‘혐의’ 탓이었다. 그 얘기를 하면서도 박 작가는 담담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 기조만 잘 지켜도 충분하다”고 했다. 미술계 적폐에 대한 언급도 피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과연 미술이 뭔지를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예컨대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층고가 5~8m다. 그저 서구를 따라 한 것일 뿐 왜 그렇게 높아야 하는지 아무도 생각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미술 평론과 교육, 저널리즘 전부가 식민화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역시 아무도 그 사실을 돌아보지 않는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은 미술사’에 “국현 서울관은 국군 기무사가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안전기획부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경성재판소를 리노베이션한 건물이다”고 명기했다. 공간을 매개로 한 미술 정책과 이른바 미술 주류에 대한 비평이다. ‘안녕’ 전시는 7월 2일까지.

박 작가는 박찬욱 감독과 ‘파킹 찬스’라는 프로젝트 팀으로 협업한다. 아이폰으로 찍은 단편영화 ‘파란만장’은 2011년 베를린영화제 단편 부문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형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컬렉션 전시 ‘하이라이트’(8월15일까지)에서 3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박 감독의 2000년 작품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세트장을 3D로 재구성한 15분짜리 영상이다. 박 작가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왜 이 지경인가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박찬경 '시민의 숲'. 국제갤러리 제공
박찬경 '밝은 별 5'. 국제갤러리 제공
'안녕 安寧 Farewell' 전시실.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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