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점은 저장공간ㆍ위생문제로 거부
빈병 보조금 인상 넉달…신고건수 2배가량 증가
서울의 한 편의점 점주 A(56)씨는 올해 1월 빈병보증금 인상 이후 고심이 늘었다. 빈병을 들고 편의점에 찾아오는 손님이 꽤 늘었지만 이를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 다른 마트에서 바꾸는 것을 회유하다가 말다툼 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편의점은 내부에 빈병을 보관할 곳이 없어 점포 뒤편 주차공간에 쌓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A씨는 “위생 관리에 철저해야 하는데 더러운 병들도 많고 마땅히 둘 곳도 없어 빈병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빈병 재활용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올해부터 빈병보증금을 대폭 인상했지만 회수를 꺼리는 소매점이 많아 소비자와의 갈등이 잦다. 14일 환경부에 따르면 작년 연간 총 92건에 그쳤던 ‘빈병 반환 거부 매장’ 신고 건수가 빈병보증금이 인상된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4개월 동안 171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월 평균 신고건수로 비교하면 8건에서 43건으로 5배 넘는 증가세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빈병 반환을 거부하는 소매점을 신고하면 해당 소매점의 첫 적발 과태료(50만원)의 10%인 5만원을 포상하는 신고포상제도(일명 병파라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빈병보증금 인상 후 반환에 나서는 소비자와 이를 꺼리는 소매점이 동시에 늘면서 병파라치도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상당수는 빈병 반환을 두고 불편을 토로하고 있다. 소주병(400㎖ 미만) 보증금은 기존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400㎖ 이상 1,000㎖ 미만)으로 오른 덕에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일부 노인들을 중심으로 ‘병테크(빈병+재테크)족’도 생겨나고 있지만 막상 주요 반환처인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은 이를 반기지 않는 탓이다.
정부의 집중 점검으로 소매점들이 노골적으로 빈병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는 일은 줄었지만, 해당 매장에서 산 제품인지 확인하기 위해 영수증을 요구하거나 반환 병수ㆍ요일을 제한하는 실태는 여전하다. 소매점은 1인당 하루 30병의 빈병을 조건 없이 반환해 줘야 하고, 30병 이상일 경우에만 해당 매장에서 구입하지 않은 제품에 대해 환불을 제한할 수 있다. 주부 김모(54)씨는 “소주, 맥주병 10여개를 모아 집 앞 슈퍼마켓에 가져 갔는데 해당 매장에서 산 것만 반환이 된다고 설명해 도로 가져와 집 앞 재활용수거함에 넣었다”고 말했다.
소매점 업주 입장에서도 불만은 많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49)씨는 “빈병을 받고 있지만 담배꽁초를 넣거나 술이 남은 상태로 가져오는 병들이 많아 편의점 위생 관리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병 외부에 바코드가 부착돼 있어야 보증금을 내줄 수 있는데, 바코드가 없는 오래된 병을 들고 와서 무작정 바꿔달라는 손님들도 상당수다.
정책을 악용하는 병파라치들도 소매점들에겐 큰 골칫거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편의점 빈병 거부 신고 후기’와 함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병파라치 전용 커뮤니티가 여럿 개설돼 있을 정도다. 20년 넘게 강북구 등지에서 빈병을 수거하고 있는 수집상 김모(57)씨는 “음식점이나 술집의 경우 빈병을 100% 회수할 수 있는데도 빈병보증금 인상을 이유로 술값을 올려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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