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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재인 정부는 좌파 정부가 아니다

입력
2017.05.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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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마침내 권력을 사유화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렸다. 그런데 두렵다. 정권교체의 환희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해방, 4·19 혁명, 6월 항쟁은 환희와 변혁에 대한 기대로 충만했지만, 세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해방 이래 지금까지 기득권층은 여전히 기득권층으로 남아 있고, 변혁의 주체였던 시민은 항상 권력으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은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난 수개월 동안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의 민의를 문재인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적폐를 청산하고 혁명에 가까운 변혁을 원하는 시민과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함께할 수 있을까? 잘못된 기대는 불행한 역사를 낳는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정당도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유럽의 사민당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한 계급 기반을 가진 정당도 아니다. 굳이 민주당의 이념적·정치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제도권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 기대는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 시민이 중도적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를 넘어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 시민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던 참여정부의 재림을 보게 될 것이다. 좌파 정부에는 시장과 자본을 강력히 통제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혁명적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겠지만,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게 좌파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한 복지정책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후보였던 유승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승민 후보가 조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여건을 고려해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유승민 후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좌파 정부가 아닌 중도적 자유주의 정부에게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경험한 시민에게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법치를 핑계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주도형 재벌 중심의 경제를 해체하고,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국가가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접자.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복지보다는 경제 살리기가 우선인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민이 중도 자유주의 정부를 선택했다면 그에 합당한 기대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혁명적 변화를 원했다면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세력에게 표를 주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어야 한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가 해야 하는 공정한 경쟁과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시민에게 기본적 복지를 제공하며,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확대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출범시키는 것까지만 기대를 하자. 좌파 정권에게는 좌파적 개혁을, 중도 자유주의 정권에게는 중도 자유주의 개혁을 요구하자. 사실 이것도 벅차다.

하지만 만약 문재인 정부가 촛불 혁명의 역사적 소명을 기억한다면 일하는 사람이 정치세력화하고,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고, 이 정당이 집권할 수 있는 정치개혁을 실천하길 바란다. 기억하라. 정치를 바꾸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또 다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두렵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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