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목소리로 “국민ㆍ지역구의 요구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기성 정치인”
“친박계 엄존하는데 명분없이
지방선거 등 앞두고 욕심만 챙겨”
‘철새 정치’ 행보에 비난 봇물
2일 오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 10위는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석권했다. 선도 탈당한 이은재 의원을 포함한 14명은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주역이기도 하다. 탈당파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정치는 현실”이라고 항변했지만 ‘개혁보수의 기치를 헌신짝처럼 버린 철새 정치인들의 궤변’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탈당파 의원들은 지난해 12월 옛 새누리당을 떠난 뒤로 최순실국정농단국정조사에서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소추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개혁보수로 신분을 세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선 국면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개혁보수의 기치와 명분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았다.
탈당파 의원들은 하나같이 지역구 핑계를 대고 있다. 지난해 한국당에서 친박 패권에 맞서 비상시국회의를 조직하고 대변인을 맡았던 황영철 의원은 2일 탈당 선언 기자회견 뒤 “보수의 재건과 승리를 위해 과거의 상처는 씻고 함께 나가라는 게 국민과 지역구 지지자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넉 달 전엔 친박계를 향해 “보수의 재건을 반대하는 수구”라고 했었다. 황 의원은 “그래도 소신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이날 비판 여론이 일자, 탈당계 제출을 보류했다.
탈당파 의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해 새누리당을 탈당할 때와 상황이 달라져서 다시 입당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스타로 떠올랐던 장제원 의원은 오히려 더 솔직하게 속내를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현실과 타협한 것”이라며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기성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정치실험이 현실정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자괴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유승민 대선 후보와 가까운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한 바른정당 의원 대다수의 자아분열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포기를 선언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스스로 개혁보수의 구심이 되기보다 대안 찾기에 몰두했다. 분열된 자아는 ‘제3지대 빅텐트’ 도모, 안철수 국민의당ㆍ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3자 보수후보 단일화’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갖은 시도가 무산되고 정권 창출의 희망이 없어지자 의원들의 입에선 당장 내년 지방선거 걱정이 나왔다. 한국 정당 최초로 스탠딩 토론을 도입한 실험적인 대선 후보 경선도 대다수의 의원들은 사실상 영혼 없이 치렀다.
여기에 유 후보의 친화력 부족을 둘러싼 불만도 극에 달했다. 한 의원은 “선거대책위를 꾸릴 때도 후보가 직접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김세연) 사무총장이 대신 했다”며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의원은 “지금도 이런데 대선이 끝나면 ‘유승민당’으로 만들려 할 것”이라며 “후보를 믿을 수 없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그렇더라도 탈당파 의원들의 ‘도로 한국당’ 행보가 정당해질 수는 없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친박계가 엄존하는데다 (홍준표) 대선 후보가 버젓이 친박표심을 자극하며 선거운동을 하는 마당에 다시 한국당에 들어가는 건 명분이 없다”며 “더구나 대선 와중에 후보를 흔드는 일은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도리어 탈당파 의원들의 뒷모습에는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걱정과 3년 뒤 총선에서 당선이 불투명하다는 개인적 욕망이 가득했다는 지적이다. 탈당파 한 의원은 “정치는 현실인데,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 보다 못한 성적을 거두면 내년 지방선거는 끝장 난 것”이라며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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