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ㆍ복지 등은 뒷전... 훈ㆍ포장 제도 개선 필요

보훈처ㆍ문체부ㆍ산자부 추천 쏠림
무역의 날 하루에만 69개 수여
일부 부처 “훈ㆍ포장 늘려달라” 사정
행자부 “포상총량제 준수” 문전박대
정부 포상 수여식 모습. 연합뉴스

국가와 사회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수여되는 국가 훈장과 포장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개발 시대 산물인 새마을운동 관련 인사들에게 한 해 수여되는 훈ㆍ포장이 지난해 63개에 달한 반면, 인권 발전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된 건 고작 2개에 불과했다. 또 체육의날과 무역의날에 체육인과 수출 기업인 등에게 돌아간 훈ㆍ포장은 각각 115개, 69개에 달했지만, 사회복지의날에 배정된 것은 고작 4개였다. 여기엔 정부 부처는 물론 관변단체들의 입김도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행정자치부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정부 부처별 훈ㆍ포장 지급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총 1,813개의 훈ㆍ포장을 수여했다. 이는 일정 근속 연수를 채우고 퇴직한 공무원이 받는 근정 훈ㆍ포장 1만6,807개와 국방부가 추천하는 훈ㆍ포장을 제외한 규모다.

정부 부처별로 보면 국가보훈처가 가장 많은 248개를 추천했고, 문화체육관광부(209개), 산업통상자원부(201개), 행정자치부(160개), 고용노동부(119개) 등이 뒤를 이었다. 전체 중앙행정기관 37곳 가운데 이들 상위 5개 기관의 추천으로 수여된 훈ㆍ포장이 937개(51.7%)로 절반을 넘는다. 독립유공자 등을 관리하는 업무 특성상 훈ㆍ포장 수여가 많은 보훈처를 제외하더라도 특정 부처의 쏠림 현상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이들 부처가 주관하는 각종 기념식 행사에는 훈ㆍ포장들이 넘쳐난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5일 ‘무역의날’ 행사에서 하루에만 각급 산업 훈ㆍ포장을 69개(표창 포함시 680개)나 줬다. 문체부 역시 지난해 10월15일 ‘체육의날’ 행사에서 각급 체육 훈ㆍ포장 108개(표창 포함시 115개)를 수여했다. 특히 마을 새마을 지도자나 부녀회장, 새마을금고 대표 등에게도 지난해에만 62개의 훈ㆍ포장이 돌아갔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만들어진 새마을 훈ㆍ포장은, 퇴직공무원 훈ㆍ포장을 제외하면 여전히 가장 숫자가 많은 훈ㆍ포장 중 하나다.

이처럼 기업인이나 체육인, 새마을운동 지도자 등에게 많은 훈ㆍ포장이 돌아가는 것은 수출 활성화나 스포츠 육성 등이 주요 정책 과제였던 경제개발과 군사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여전히 이런 분야 업적이 중요하긴 하지만, 인권이나 성평등, 환경, 복지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중요성이 커진 다른 분야들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대한민국인권상’에 지난해 배분된 훈ㆍ포장은 2개에 불과하며,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의날’에 줄 수 있는 훈ㆍ포장 역시 4개에 그친다. ‘환경의날’(환경부)과 ‘양성평등주간’(여성가족부)에 배정된 훈ㆍ포장 개수 역시 각각 9개, 5개에 머물렀다.

이러다 보니 일부 부처에선 분배 권한을 쥐고 있는 행자부를 찾아가 훈ㆍ포장 개수를 늘려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한 정부부처 차관은 최근 행자부 과장을 직접 찾아가 “타 부처에 비해 훈ㆍ포장 개수가 너무 적으니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개수를 늘려주려면 다른 부처 것을 줄여야 해 어렵다”는 매몰찬 답변만 들었다. 이 차관은 “훈ㆍ포장은 정부 정책이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게 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여서 단 몇 개의 훈ㆍ포장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는 ‘을’의 입장에서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행자부는 ‘포상총량제’때문에 부처들의 훈ㆍ포장 신설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줘왔던 훈ㆍ포장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고, 분야 별로 중요성을 따지는 것도 쉽지 않아 배분 기준을 세우기가 여의치 않다”며 “달라는 대로 훈ㆍ포장을 주다 보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훈ㆍ포장이 유관 협회나 산하기관을 많이 거느린 부처 위주로 배정된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훈ㆍ포장 추천 상위 부처들은 대부분 관련 협회 등이 많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 유관 협회들이 회원의 연령이나 회비를 낸 실적 등에 따라 나눠먹기 식으로 후보자를 추천해 훈ㆍ포장을 받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행자부가 ‘정부포상업무 지침’에 ‘대상자 선정 업무를 산하기관이나 협회, 단체 등에 전적으로 위임하거나 포상인원과 훈격을 사전에 할당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경고해야 할 정도다.

훈ㆍ포장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행자부는 일반 국민이 직접 추천하는 ‘국민추천 포상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이 제도로 훈ㆍ포장을 받은 사람 수는 16명으로 전체의 0.9%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예산의 경우 국회나 시민단체 등 감시의 눈이 많은 반면, 훈ㆍ포장은 행자부의 재량이 너무 커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협회와 같은 중간단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지방자치단체 등 대민 접촉이 많은 곳에 발굴을 의뢰해 꼭 받아야 할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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