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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사람도 서킷 후유증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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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사람도 서킷 후유증에 시달려…

입력
2017.04.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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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운전을 시작한지 3주째인 주말에 투스카니를 몰고 인제 스피디움 서킷을 질주했다. 연식이 있는 차라 조심스레 다뤘어야 했는데 요령도 없이 의욕만 넘쳤다. 차가 내지르는 타이어 타는 소리부터 차체의 삐걱 소리, 덜컹 소리 같은 비명을 모른 척 달린 기억이다.

결국 3세션에서 연석을 뛰어 넘어 세이프티 존 잔디밭까지 들어갔다. 휠, 타이어, 펜더에 흙과 잔디를 가득 끼운 채 피트로 돌아왔지만, 4세션 시작 직전 확인한 타이어 공기압은 멀쩡했다. 그리고 분명 4세션은 별다른 이탈 없이 트랙만 달렸다. 물론 연석을 몇 번 살짝 오르긴 했지만…

서킷 달린다고 고생했다, 투스카니
서킷 달린다고 고생했다, 투스카니

드디어 스피디움 클럽 트랙데이의 모든 일정이 끝났고 사용한 피트를 정리한 뒤 떠나기 직전 차의 상태를 점검했다. 오른쪽 앞 타이어의 공기압이 유난히 빠져 있었지만, 눈으로 보기에 별 이상이 없었다. 타이어 공기압만 맞추고 집으로 향해 서킷을 빠져 나왔다.

봄철 일요일 저녁이라 귀경 인파로 도로가 막힐 것 같아 다들 저녁을 먹고 느즈막이 출발하기로 하잖다. 레이스몰 유영선 드라이버, 김영민 드라이버, 라온레이싱 심정민 드라이버, 인투레이싱 박현식 대표와 박민주 드라이버 등 함께 피트를 썼던 클럽 사람들과 인제 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을 찾았다. 자동차로 모인 사람들답게 저녁을 끝내고도 한동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커피는 휴게소에서 만나 마시자며 각자 차를 타고 휴게소로 출발했다. 문제 발생 시작이다.

차가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밀어서 버텨야 할 만큼 계속 오른쪽으로 가려고 했다. 사실 투스카니는 살 때부터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도가 심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날 것 같아 뒤따라오는 유영선 드라이버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내 차 뒤에서 보기에 이상해요? 차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던가…”

“아니? 왜?”

“차가 자꾸 오른쪽으로 가요. 아무래도 타이어가 이상해…”

“달릴 수는 있지? 일단 가까운 졸음 쉼터나 휴게소에 세워봐”

공기압 측정 중. 이상하다, 분명 출발 전에 36psi까지 채웠는데
공기압 측정 중. 이상하다, 분명 출발 전에 36psi까지 채웠는데

가장 먼저 나타난 휴게소 주차장에 투스카니를 세우고 기다리니, 곧 유영선 드라이버와 심정민 드라이버가 함께 구난하러 왔다.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해보니 그 사이에 오른쪽 앞 타이어 공기압이 19psi까지 떨어져 있었다. 분명 스피디움에서 출발하기 전 36psi까지 채웠었는데.

“이거 공기 새는 거 아냐?, 뭐 물 뿌릴만한 거 없어?”

“유리 세정제 있는데요?”

(칙칙칙칙-)

“새네!”

휠과 타이어 사이에 낀 흙과 잔디를 빼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총 동원됐다.
휠과 타이어 사이에 낀 흙과 잔디를 빼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총 동원됐다.

일단 휠과 타이어 사이에 잔뜩 끼어있는 흙과 잔디를 긁어내기로 했다.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적당한 도구나 장비가 있을 리 없었다. 다행히 심정민 드라이버에게 차를 들어올릴 잭과 몇 가지 공구가 었다. 타이어에서 공기를 아예 10psi이하로 빼버리고 휠과 타이어 틈새를 벌려서 아무 막대기로나 일단 마구 긁어냈다. 그리고 차를 내려 긁어낸 부분을 바닥으로 돌린 후 앞뒤로 차를 밀어 벌어진 틈새를 눌러주고 다시 타이어에 공기를 채웠다.

결과는? 기적 같은 성공이면 좋겠지만, 공기압을 채우는 족족 바람이 새며 뿌려둔 유리 세정제와 함께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번엔 성공했을까? 기대하며 타이어에 공기를 채우자 다시 보글보글 올라오는 공기방울
이번엔 성공했을까? 기대하며 타이어에 공기를 채우자 다시 보글보글 올라오는 공기방울

“한 번만 더 해볼까?”

이 말을 열두 번쯤 들었다. 잭으로 차를 들고, 타이어 바람을 빼고, 지렛대의 원리로 타이어와 휠 사이를 벌리고, 그 사이를 긁어내고, 차를 내려서 앞뒤로 밀며 타이어를 누르고, 다시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과정을 열 번도 넘게 반복했다는 얘기다. 글로 보면 별 일 아닌 것 같겠지만 차를 드는 일부터 내려서 앞뒤로 미는 것까지, 힘이 안 들어가는 게 없었다. 밤이 되니 날은 또 왜이리 추운지.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덜덜 떨면서 계속 작업을 반복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애를 쓰며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던 두 분에게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심정민 드라이버는 다음날 아침 8시 출근이라고 그랬는데.

강도를 높여가며 바람을 빼고 넣고 하기를 여러번. 드디어 공기 방울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괜찮나 보다며 중간 약속장소였던 휴게소로 향했다. 휴게소까지가 대략 70km 정도였는데, 20km를 지날 무렵부터 차는 다시 오른쪽으로 심하게 밀렸다. 중간에 이상하면 언제든지 다시 말하라고 했는데, 솔직히 나를 비롯해 다들 밖에서 추위에 떨며 그 작업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그냥 조심스레 휴게소로 향했다.

타이어 공기압은 예상한대로 다시 줄어있었다. 19psi. 일단 휴게소로 들어갔다. 앞서 갔던 세 사람까지 우리를 두 시간 동안 휴게소에서 기다리며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별 뾰족한 수 없이 타이어에 다시 공기압을 채우고 가다가 이상하면 갓길에 세우고 다시 공기압을 채우는 작업을 반복하며 돌아가기로 했다. 유영선 드라이버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아… 타이어 한 번 뺐다가 털어내고 끼우면 될 거 같은데…”

“저희 인투 공장이 여기서 한 70km 거리인데, 일단 여기로 가시죠? 타이어 탈착기 있습니다”

“네? 지금이 몇시인데, 다들 집에도 못가잖아요…”

새벽 1시. 인투 공장 도착
새벽 1시. 인투 공장 도착

휴게소에서 집까지는 150km 정도, 인투까지는 70km다. 아무래도 집까지 한 번에 가기는 힘들고 인투에 들러 제대로 상태를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미 밤 12시, 더군다나 다음날은 모두가 출근하는 월요일이라는 것. 하지만 박현식 대표의 ‘어차피 들렸다 가야 한다, 괜찮다’는 말 덕분에 실례를 무릅쓰고 그곳으로 향했다. 무사히 인투에 도착해 타이어를 완전히 분리했다가 다시 잘 장착하고 상태를 확인했다. 여전히 공기가 샌다. 타이어는 이미 망가져버린 터라 일단 인투에 있는 사이즈 맞는 타이어를 빌려 끼우고 무사히 귀가했다. 오늘로써 민폐의 아이콘 등극!

#

투스카니는 처음부터 경주에 꼭 필요한 수동 운전을 연습하기 위해 두 달만 타다 팔려고 했던 차다. 한 달만 더 타다 팔 건데, 타이어를 새로 사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타이어가 거의 닳지 않은 새 것 같았기에 더 아쉬웠다. 아침부터 타이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소문이란 어찌나 빠른 지 어제 자리에 없던 라온레이싱 최헌호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타이어 찢어졌다며, 어쩔 거야, 새로 살 거야?”

“음. 저렴한 타이어 뭐 있어요?”

“나 타이어 버리려다 혹시나 싶어 보관하고 있는 거 있어, 그냥 그거 끼워. 나름 V720이야”

비투어 타이어 의정부점. V720으로 투스카니 타이어 바꾸는 중
비투어 타이어 의정부점. V720으로 투스카니 타이어 바꾸는 중

당장 의정부에 있는 최헌호 감독의 가게로 달려갔다. 같은 가게에서 비투어 타이어를 팔고 있어서 다른 브랜드 타이어를 장착만 해달라는 게 왠지 미안했지만, 지금이 체면 차릴 땐가! 타이어 교체 공임만 드리고 최헌호 감독에게 얻은 V720으로 바꿔 끼웠다.

“비 오는 날은 타지마”

“조심 조심 타면 되죠~”

“안탄다고 안 하네”

“헤헤”

서킷에서 파워 스티어링 오일이 샜던 게 영 마음에 걸려, 아예 다 교환해버릴 생각으로 집에서 가까운 정비업체 곰스팩토리를 찾았다.

“파워 스티어링 오일 정상인데?”

“그 때 엄청 쏟아졌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많이 들어가서 넘쳤나 보네. 정상이에요. 바꿀 필요 없어요”

#

곰스팩토리에서도 투스카니가 문제 없다는 얘기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엔진 오일, 브레이크 용액, 클러치 용액도 다 갈아주고, 엔진룸도 깨끗이 닦았고, (다 닳았지만) 하이그립 타이어도 신겨주고 났더니, 자꾸만 뭔가 더 살펴보고 고쳐주고 싶어진다. 그 새 투스카니에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며칠 전 KSF에서 현대, 기아 자동차만을 대상으로 트랙데이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자마자 바로 신청하고 입금까지 완료했다. 정비도 싹 마쳤으니 지난번 보다는 잘 탈 수 있겠지. 걱정이 하나 있다면 서스펜션이다. 지난번 서킷 스피디움 클럽 트랙데이 주행 때 뒤에서 오토미디어 김태진 드라이버가 주행 라인을 뒤따라오며 찍어줬는데, 서스펜션이 수명이 다 된 것 같다며 서킷은 더 이상 달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왠지 이번엔 정말 사고가 날 것도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리고…

.

..

스피디움에 다녀온 지 딱 일주일 되던 날, 덤프트럭이 잘 달리던 투스카니를 뒤에서 사선으로 덮쳤다. 뒷범퍼에 이어 운전석 문 바로 뒷부분을 쳐서 찌그러뜨렸다. 접촉 부분이 운전석이 아니라 내가 다치지는 않아 천운이었다.

덤프 트럭에게 치여 결국 폐차처리한 내 투스카니
덤프 트럭에게 치여 결국 폐차처리한 내 투스카니

하지만 몸값이 낮았던 투스카니는 자기 몸값보다 비싸게 나온 수리비를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폐차 결정이 났다. 내 투스카니는 두 번 다시 서킷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내 곁을 떠나고야 말았다.

투스카니를 데려오기 위해 152만원을 썼고, 떠나 보내며 110만원을 받았다. 서킷 주행을 위해 정비하는 비용까지 40일간 84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크지 않은 비용으로 투스카니와 함께 출퇴근 하고 주말에는 시장도 가고 서킷까지 달렸다. 수동 변속기에 익숙해졌고, 자동차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다. 그렇지만 서킷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그 다음주에 사고로 폐차라니! 타이밍이 참 묘했지만 이제 투스카니는 내 곁을 떠났고 ‘수동 ‘초짜’ 기자, 운전 3주 만에 서킷 도전하다’라는 기사만 남았다. 아쉬움은 빨리 털어버리고 이제는 경주에 참가할 차로 연습해야겠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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