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정치권에서 때 이른 사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박 전 대통령 사면을 검토할 여지가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국민 요구가 있으면 (사면)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답한 게 발단이다. ‘사면’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최근 “이제 용서해야 할 때다” “감옥까지 보냈으면 분풀이가 끝나지 않았나”며 ‘용서론’을 폈다.
안 전 대표는 “재판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사면 가능성을 언급한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더불어민주당 등의 비판이 쏟아지자 "대통령의 자의적인 사면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데 방점을 둔 말이었는데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다고 반박했다. 상황이나 맥락을 보면 그의 발언 취지를 다른 정파가 정략적으로 비튼 감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 당한 뒤 구속까지 돼 이제 사법의 심판 절차를 받으려는 단계에서 사면 가능성이나 형식을 언급해 논란을 부른 것은 부적절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탄핵도 구속도 모두 부당하다며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으니 사면이니 용서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정제되지 않은 지지 세력의 구호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그것도 주요 대선 주자로부터 사면 논란이 벌어진 것은 개운치 않다. 특히 사법 처리 완결은커녕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사면 운운하는 것은 사법 절차를 정치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한다는 의구심을 줄 우려가 크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구속됐던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각각 무기징역과 17년의 형량이 확정되었지만 결국 사면되었다. 1995년 말 구속되어 1년 반 만에 대법원 최종심이 나왔고, 그 뒤 8개월 만에 사면됐으니 두 전 대통령은 2년 남짓 옥살이를 했다. 형식도 그들을 사법으로 단죄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독자 판단이 아니라 정권을 이어 받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 대화합을 위해 건의해 결정한 것이었다.
이번 주부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관련 혐의로 먼저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ㆍ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첫 공판도 시작된다. 이런 조사와 재판이 완결돼 우선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혐의자들이 법의 단죄를 받고 난 뒤 사면을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때 국민들 사이에 사면론이 부상하면 검토하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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