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잊고 싶은 메시지’ 10초 안에 삭제…10대의 취향을 저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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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잊고 싶은 메시지’ 10초 안에 삭제…10대의 취향을 저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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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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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ㆍ동영상 자동삭제 스냅챗

기존 SNS서 없던 역발상 전략

소수 절친과 깊은 소통에 초점

하루 이용자 1억6000만명 확보

상장 첫날에 기업가치 38조원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취약성

스피걸 경영능력 평가는 논란

“투명 경영과 후속 기술 없인

사업 지속 쉽지 않을 듯” 지적도

에번 스피걸(오른쪽) 스냅 최고경영자가 2일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스냅 상장을 알린 후 공동창업자인 보비 머피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 월가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정문에 성조기와 함께 노란 바탕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거래소 내부 곳곳에 설치된 시황 모니터에는 하얀 유령이 등장했다. 오전9시 검은 정장에 노란 넥타이를 멘 한 젊은 남성이 단상 위에 올라 뉴욕 증시 상장을 알리는 벨을 누르면서 ‘40조원에 달하는 정보기술(IT) 공룡’의 탄생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Snapchat)을 개발한 회사 스냅(Snap)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에번 스피걸(27) 이었다. 스냅챗은 사진과 영상을 보낼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확인하면 10초 내에 삭제돼 ‘자폭 메신저’, ‘단명 메신저’라 불리며 젊은 세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이 앱을 매일 사용하는 이용자 수는 1억6,000만명, 하루에 이 앱을 통해 공유되는 사진은 3억5,000만장을 넘는다. 공모가 17달러였던 스냅의 주가는 상장 첫날 주당 24.48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44%나 급등했다. 화려한 신고식이었다. 이날 상장으로 스냅은 기업가치가 330억달러(약 38조원)인 기업이 됐고, 이 회사 주식 20%(2억2,300만주)를 보유한 스피걸은 단숨에 자산이 44억달러(4조9,000억원)로 불어 IT업계의 최연소 억만장자로 자리매김했다.

에번 스피걸 스냅 최고경영자가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냅 본사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뒤로 스냅챗의 로고인 하얀 유령이 노란 벽 위에 그려져 있다. 스냅챗은 메시지를 받으면 최대 10초 내에 사라지는 기능이 있어 ‘유령 메신저’라 불리며 10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엘리트 출신

스피걸은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부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이비리그 출신 유명 변호사인 덕분에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16세 때 자동차운전면허를 딴 뒤 아버지로부터 1억원을 호가하는 캐딜락과 BMW 550i를 선물 받고,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전용 헬기를 타고 캐나다를 방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 영화배우 잭 블랙, 케이트 허드슨, 조나 힐 등 유명인사들이 다닌 산타모니카의 사립 명문 크로스로드고교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스피걸은 이후 2013년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나는 젊고, 백인이며, 잘 교육 받은 남성으로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며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며 자신의 유복했던 유년기가 성공의 뒷받침이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포츠활동과 디자인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스피걸은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에너지음료기업인 레드불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고, 재무관리 소프트웨어 회사인 인튜이트(Intuit)가 인도에서 농업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스콧 쿡 인튜이트 창업자와 에릭 슈밋 구글 CEO 등이 진행하는 경영학 수업을 들으면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스피걸은 대학 내 사교클럽 ‘카파 시그마’(Kappa sigma)를 이끌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 그는 스냅의 공동창업자인 보비 머피(29)를 만났다. 스피걸은 머피와 만나 스냅챗을 만들었고, 창업하면서 학업을 포기했다.

‘사라지는 사진’, 대학 수업과제를 창업 아이템으로

2011년 4월 스피걸은 친구 중 한 명이 메신저로 사진을 잘못 보낸 것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보낸 사진이 사라지게 만드는 앱이 있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해 학과 수업 과제로 ‘사라지는 사진’(Impermanent Photo) 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스피걸은 머피와 함께 상대방에게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보내면 일정 시간 후 게시물이 사라지는 메신저 앱인 스냅챗을 개발했다. 앱을 개발한 뒤 그들은 대형 쇼핑몰 등에서 시연하며 이용자들을 모집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후 스피걸의 사촌동생이 앱을 설치해 친구들과 사용하면서 10대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친한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주고 받지만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부모와 학교의 간섭과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 10대들의 욕구를 만족시킨 것이다. 10대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스피걸은 2011년 9월 창업하고 본격적인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다양하게 보정할 수 있는 필터 기능을 더했고, 귀여운 유령 모양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앱 출시 후 2년 만인 2013년 하루 이용자 수가 3,000만명을 넘어섰다. 2014년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 조사에서 스냅챗은 미국 젊은층(18~31세)에 인기 있는 앱 순위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신생기업 스냅챗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세계 1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업체인 페이스북이다. 스냅챗의 성장을 눈여겨보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는 2013년 스냅챗에 현금 3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스냅챗은 이용자 수는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었지만 광고매출 등 수익은 미미했다. 그러나 스피걸은 너무 낮은 금액이라며 저커버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 일화 덕에 스냅챗은 더욱 유명세를 탔고, 이후 구글과 알리바바 등 세계 굴지의 IT기업으로부터 투자와 인수 제안이 쏟아졌다. 스피걸은 이와 관련 “페이스북이 스냅챗보다 더 혁신적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고 회고했다.

역발상 전략으로 페이스북 대항마로 우뚝

페이스북 인수 제안 거절 이후 스냅챗은 승승장구했다. 2014년 말 하루 이용자 수가 5,00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 말에는 1억6,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스냅챗의 광고매출은 전년 대비 500% 증가한 4억450만달러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광고매출이 9억4,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스냅챗의 성공에는 기존 SNS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역발상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스피걸은 2015년 스냅챗 광고 동영상에서 스냅챗의 특성에 대해 “나의 정체성은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불특정 다수에 노출되는 SNS 특성상 개인의 정체성은 과대 포장되거나 규정화되기 쉽다. 예컨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멋지고 좋은 모습만 올리고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흉내 내는 일이 많다. 스피걸은 이 같은 SNS 특성에 불편함을 호소했던 젊은 세대들을 파고들었다. 소수의 친분이 있는 이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자기를 보여주고 거리낌없이 사적인 사진과 대화를 SNS로 주고 받되 SNS상에 기록이 남는다는 부담을 없애준 것이다. 그는 “지인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더라도 소수의 절친한 사람들과 깊게 소통하고자 한다는 점에 착안해 앱을 개발했다”며 “또 사람들은 즐겁고 밝기도 하지만 실제 삶은 우울하고 어두운 면도 있는데, 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에 기존 SNS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스피걸의 이 같은 역발상 전략은 기존 SNS 특성을 완전히 뒤엎으며 적중했다. 조시 엘먼 벤처투자자는 “페이스북 등이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보존하는 데 주력할 때 스냅챗은 페이스북이 놓친 ‘잊고 싶은 기억’을 잡는 데 성공했다”라며 “사실 우리의 기억 99%는 잊고 싶은 기억”이라고 평가했다. 스냅챗 인수에 실패한 페이스북은 뒤늦게 스냅챗과 기능이 유사한 사진 메신저 앱 포크(Poke)를 내놨지만 시장의 혹평을 받았다.

에번 스피걸의 약혼녀인 슈퍼모델 미란다 커가 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스냅 상장을 축하하며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차세대 IT업계 거물? 할리우드 스타?

스냅챗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스피걸도 IT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스피걸은 2014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고, 지난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호’에도 이름을 올렸다. 슈밋 구글 CEO는 “스피걸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뒤를 잇는 IT 업계의 차세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스피걸은 지난해 모바일 메신저 업체에 머물러 있던 스냅을 ‘카메라 회사’로 규정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난해 말 자신의 시각과 동일한 이미지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선글라스에 부착해 앱으로 즉각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스펙터클’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드론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스피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사업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시작했다”며 “향후 5년간 사람들에게 창의력이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스냅이 성장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미래상품이 어떤 종류의 것이 될 것인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반면 아직 그의 경영능력에 대해 속단하기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스냅챗을 잇는 히트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스냅은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가도 상장 이후 약 보름 만인 20일 주당 19.54달러로 추락해 최고가(29.44달러) 대비 30%이상 떨어졌다. 특히 미 증시 상장 처음으로 무의결권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들의 불만도 크다. 언론들은 주주들의 경영 간섭을 막는 스피걸의 독단적인 경영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2011년 스냅챗에 투자했던 한 벤처투자자는 스피걸에게 표준 투자양식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가 “표준양식이 필요하다면 표준적인 회사에나 투자하라”는 면박을 들었다. 2013년과 2014년 잇따라 스냅챗 이용자들의 연락처와 사진 등이 해킹 당해 온라인에 유출됐을 때도 미온적으로 대응, 보안취약성도 도마에 올랐다.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 범죄 행위나 일탈을 부추긴 일도 있고, 여성 비하 발언 등이 담긴 이메일 내용이 대거 공개돼 사과를 하기도 했다.

폐쇄적인 경영방식과 달리 그의 사생활은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2015년 명품브랜드인 루이비통 행사장에서 만난 슈퍼모델 출신 연인 미란다 커(34)와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면서 ‘할리우드 스타’ 취급을 받고 있다. 스피걸은 지난해 커와 약혼을 발표하고, 665㎡이 넘는 미국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의 저택을 1,200만달러에 샀다. 월가 경제전문가들은 “그가 보여줘야 하는 것은 유명한 여자친구가 아니라 혁신적인 기술과 투명한 경영 자질”이라며 “변덕스러운 10대들을 기반으로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미란다 커와 에번 스피걸은 지난해 7월 약혼을 발표했다. 미란다 커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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