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한국에서 미국의 북핵 및 한반도 정책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미국이 추진하는 ‘새 대북 접근법’의 윤곽을 공개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어서 중국, 북한 등 관련국 반응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취임 후 처음으로 아시아를 순방 중인 틸러슨 장관은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지난 20년 간 북한과의 대화시도는 실패로 끝났다”면서 “대량살상무기와 핵을 포기해야만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전임 정부에서 취했던 ‘전략적 인내’도 “분명히 끝났다”고 단언했다. 북한과의 대화는 배제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힌 상태여서 북핵 사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틸러슨 장관은 특히 “군사적 갈등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도 “북한이 한국과 주한미군 위협 수준을 높인다면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해 선제공격 등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준비 작업이 마감단계”라고 공언한 마당이다. 최근에는 6차 핵실험 징후도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북한의 도발을 강력 응징한다는 미국의 의지를 확인한 것은 평가할 만하나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강대강의 국면을 해소할 외교적 노력도 그만큼 절박해졌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조치가 최고 수준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한 발언도 미국의 향후 북핵 대응을 점칠 단초다. 미국 조야에서는 군사적 억지능력을 높이면서 대북제재의 수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북 접근법이 정리되는 분위기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겠다’는 과거와 원칙적으로는 같다.
문제는 대북 압박의 열쇠를 쥔 중국이다. 틸러슨 장관이 “중국은 자신들이 찬성했던 안보리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고 한 것은 중국의 적극적 대북 제재 동참이 유일한 현실적 카드임을 인정한 발언이다. 그런 점에서 한중, 미중 간 갈등의 핵심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향방이 더욱 중요해졌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사드에 대해 “자위적ㆍ방어적 조치”임을 재차 강조하며 중국의 사드 보복은 “매우 부적절하며 유감”이라고 했다. 틸러슨 장관의 다음 순방지인 중국에서 미중 회담이 주목되는 이유다. 지난달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확인한 바 있다. 관건은 한미 간의 굳건한 공조다. 중국을 설득하는 힘도 결국 거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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