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한동안 잠잠했던 우풍(右風)이 다시 몰아치고 있다. 유럽연합(EU) 최상위 법원이 기업의 이슬람식 스카프 ‘히잡’ 착용 금지를 법적으로 허용한 데 이어, 극우 돌풍이 불었던 네덜란드 총선이 다가오면서 유럽 전역이 반(反)이민 바람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진행된 네덜란드 총선은 올해 유럽 주요 선거의 풍향을 결정지으며 이민자들의 운명을 가를 전망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사법재판소(ECJ)는 14일 유럽 내 기업들이 특정 환경에서 종교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직원들의 이슬람식 히잡 착용을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벨기에 법원이 요청한 ‘직장 내 스카프 착용 금지가 피고용인에 대한 차별 행위인지’에 관한 법규 해석에 있어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ECJ는 성명을 통해 “고용주가 중립적인 기업 이미지를 가지려는 것은 적법하다”며 “특히 근로자들이 고객들과 접촉하는 곳에서는 중립적 복장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CJ의 판결은 유럽 반이민ㆍ반이슬람 움직임을 상징하던 ‘히잡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벨기에 법원의 법규 해석 요청은 2006년 6월 벨기에 보안업체 ‘G4S’에서 히잡 착용을 이유로 해고된 무슬림 여성 사미라 아크비타가 제기한 해고무효 소송의 연장선에 있다. EU내 최고 법적 권위를 가진 ECJ가 사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향후 종교적 중립을 표명한 무슬림 제재가 대거 가능해졌다. 그간 아크비타뿐 아니라 프랑스의 ‘공공장소 내 히잡 착용 금지’ 조치 등에 대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유사 조치에 한꺼번에 빗장을 열어준 셈이다.
이번 판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또다른 이유는 올해 유럽 선거의 풍향계로 꼽히는 네덜란드 총선을 하루 앞두고 발표돼서다. 15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은 캠페인 초기부터 극우 자유당(PVV) 헤이르트 빌더르스 후보의 약진을 둘러싸고 화제를 일으켜 왔다. 네덜란드 내 모로코계 주민을 “인간쓰레기(scum)”라고 칭할 만큼 극단적인 반이민, 반EU주의자인 빌더르스는 2012년 전체 150개 의석 중 15석에 그친 자유당을 일약 선두 정당으로 발돋움시켰다. 여론조사업체 페일(peil)이 14일 발표한 총선전 최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유당은 24석을 확보, 집권 자유민주당(VVDㆍ27석 예측)의 뒤를 이어 제2당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자유당의 선전은 집권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상징성이 높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개방과 관용의 상징이던 네덜란드가 이민자 배척 국가로 선회하며 충격을 주고 있는 것. 유로뉴스는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와 동성결혼, 기호용 대마초 판매를 합법화한 나라”라며 “가장 극우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극우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13일 지적했다.
무엇보다 연이어 예정된 프랑스 대선(4월 23일)과 독일 총선(9월)이 문제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와 앞서 1월 초국가적 연대를 공표한 빌더르스 후보에 표가 쏟아질 경우 두 국가의 극우 세력도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극우 도미노’는 내년 2월 이탈리아 총선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빌더르스 후보에 맞서고 있는 마르크 뤼터 현 네덜란드 총리는 이에 “15일은 잘못된 포퓰리즘의 승리를 좌절시킬 준준결승전”이라며 “준결승인 프랑스, 결승인 독일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반이민으로 돌아선) 영국, 미국과 같은 혼란을 막아야만 한다”고 미국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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