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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軍의 ‘재활센터’는 ‘강간 캠프’였다

입력
2017.03.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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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지부 앞에서 스리랑카 타밀족 수백명이 모여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15년 9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지부 앞에서 스리랑카 타밀족 수백명이 모여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고위 장교 하나가 내가 구금된 방으로 왔다. 장교를 안내한 군인은 그에게 ‘하나 고르라’고 했고 장교는 마치 우리를 시장 좌판에 널린 고기마냥 둘러보고는 나를 선택했다. 다른 방으로 끌려간 나는 그곳에서 바로 강간 당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인권 운동가 야스민 수카가 운영하는 ‘국제 진실과 정의 프로젝트(ITJPㆍ진실정의프로젝트)‘는 지난달 20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정식 보고서를 제출해 스리랑카 정부군이 수년간 운영해온 이른바 ‘강간캠프’의 실상을 고발했다. 스리랑카군이 반군 출신 주민 등 민간인을 납치, 고문, 강간해 온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보고서에는 이와 같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또다른 여성은 “너무 많은 남자들이 있었고 강간 당하지 않으려 스스로 지저분하게도 만들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정부군의 잔학한 횡포는 특히 스리랑카 내 힌두교 소수민족인 타밀족에 집중돼 있다. 타밀족은 스리랑카 주류 민족인 불교계 신할리즈족의 차별 통치 정책에 반발해 무장 투쟁에 나섰고 이후 1983년 7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약 26년간 내전이 이어졌다. 내전의 이면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조직적인 성폭력이 있었다. 타밀족 여성들은 2007년과 2009~2013년, 2012~2015년 각 시점에 장기 구금돼 정부군 성노예로 학대 받았으며, 강간캠프로 쓰인 4곳의 공간도 이미 밝혀졌다. 캠프와 책임자의 구체적 신원은 현재 유엔 측에만 제출된 상태다.

특히 타밀족 반군 단체였던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ㆍ타밀타이거) 조직원들은 대거 희생자가 됐다. 진실정의프로젝트에 정부군의 만행을 증언한 피해자 55명 중 35명이 타밀타이거 출신이다. 전쟁 중 포로로 잡힌 타밀타이거 대원들을 ‘반군재활센터’라는 간판의 포로수용소에서 고문, 강간한 것. 심지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다시 납치돼 정부군의 성폭력에 반복 노출됐다. 전쟁의 승자인 정부군은 이미 민간인이 된 반군 출신 인물들에 대한 보복을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다. 고문에 가담한 한 정부군 여장교는 “다음 타밀 세대에게 ‘또다른 타밀타이거는 꿈도 꾸지 말라’고 일러라, 너희들은 영원히 노예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군에 생포될 경우 강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반군은 부상자를 현장에 방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도 했다.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반군에 가담했다는 타밀족 여성 수간디(가명)는 1995년 전투에서 다리 하나를 잃었다. 이후 반군 내 정치국 업무를 주로 맡다 2009년 1월 다시 전투에 동원됐다. ‘장애 전사’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릴 만큼 당시 반군이 처한 상황은 절박했다. 그 해 종전을 사흘 앞둔 5월 15일, 수간디는 타밀타이거 내 자살 공격조인 ‘블랙 타이거’와 함께 제2선에서 전투에 가담했다. 그는 “우리는 졌고, 머리 부상을 입은 채 쓰러진 동료를 질질 끌고 전선에서 후퇴했다”고 회상했다.

전투에 참여했다 해서 모두 타밀타이거 반군에 충실한 조직원인 것도 아니다. 막바지 전선에서 뒹굴던 반군 전사들 상당수는 강제 징집된 소년 소녀들이다. 2010년 9월 만난 타밀 여성 라니(43)는 “타밀타이거는 위기에 몰리자 ‘한가정 한 타이거’ 정책으로 강제 징집을 늘려댔다”며 “아들의 똥 오줌까지 받아내며 참호 속에 숨겼다”고 말했다. 아들은 어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선으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아들은 생포 후 와우니아 지역 ‘팜파이마두 재활센터’에 수감됐다. 팜파이마두 재활센터는 진실정의프로젝트 팀이 고문, 강간이 자행되는 장소로 꾸준히 지명해온 곳이다. 보고서는 “‘재활’ 같은 건 시도조차 없었다”고 꼬집었다.

성적학대의 피해는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실정의프로젝트의 기존 보고서와 런던 의학전문지 더랜싯의 2000년 보고서 등에 따르면 정부군의 성폭행 대상에는 반군 남성도 포함됐다. 남녀 전쟁포로, 민간인 등 타밀족을 겨냥한 정부군의 성적 학대는 체계적이고도 의도적으로 자행된 정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쟁범죄’는 전쟁 이후 누구도 책임 지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진실정의프로젝트는 2014년 보고서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납치, 구금, 고문, 강간, 성폭행 등이 전쟁 이후 더욱 증가했다”고 밝혔다. 보고서 속 사례 절반 이상이 종전 후인 2013년과 2014년 사이 발생했다. 이 보고서의 조사대상 40명 역시 대부분 반군출신이었다.

이유경ㆍ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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