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동력 유지 위해 필수
미ㆍ일 경제대화 협상력에도 영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미국이 탈퇴해 사실상 해체 위기에 놓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15일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TPP 탈퇴 서명 후 처음으로 회원국 각료회의가 칠레에서 개막된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TPP를 추진해 온 아베 정부가 향후 본격화할 미일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아베노믹스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멈춰가는 TPP의 호흡을 되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아베 총리는 각료회의를 일주일 이상 앞둔 7일 내각회의에서 “각국의 생각을 확실하게 듣고 오면 좋겠다”며 회의에 참석하는 오치 다카오(越智隆雄) 내각부 부장관을 독려했다. 전체 회의에만 집중하지 말고 양국간 회담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라는 지시도 함께였다. TPP무산으로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타격을 입는 상황을 최대한 무마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11개 회원국의 입장이 제각각이어서 일본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일례로 호주와 뉴질랜드는 미국을 뺀 11개국만으로 새로운 TPP를 추진하자는 쪽이다. 축산업이 강해 협정발효로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에 대한 수출이 증가하면 미국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반면 대미 수출증가를 앞세워 국내 반대여론을 무마했던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미국없는 TPP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9일 아사히(朝日)신문은 “칠레와 페루가 중국에 참가를 요청하자는 입장이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해 소극적”이라며 “미국과 대 중국 무역포위망을 구축하려던 일본도 ‘미일동맹 경제버전’인 TPP의 본래 의미가 옅어지면서 영향을 받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이번 회의는 각국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TPP의 미래를 정하는 논의는 5월 베트남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미국의 이탈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완성체로서의 TPP를 끌고 가려는 것은 내달로 예정된 ‘미일경제대화’ 대비 차원이 크다. 일본이 미국을 뺀 TPP 체제를 받아들이면 미국은 자국과의 양자협상을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신 12개국 체제를 고수하고 TPP를 살려두면 미국이 양자협상을 제의해 오더라도 시장개방 등과 관련해 “TPP 이상의 양보는 어렵다”고 맞설 명분을 축적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도쿄의 한 통상전문가는 “TPP는 다국적기업을 많이 보유한 미국과 일본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아베노믹스를 주도한 인물들은 미국의 참여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고 있다”며 “그 동안 TPP의 국제규범을 내세워 아베노믹스 세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을 밀어붙인 아베 정부는 TPP 포기선언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글로벌스탠더드를 명목으로 내부저항을 눌러온 아베 정부가 경제구조개혁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TPP 무산을 입에 올릴 수 없는 것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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