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1975년 UN에서 매년 3월 8일로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을 축하하는 행렬에 구글도 동참했다. 이날 구글은 기념일이나 행사, 업적, 인물을 기리기 위해 구글 홈페이지에 있는 구글 로고를 일시적으로 특별히 바꿔놓는 '구글 두들'에 여성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이날 구글 두들에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수 미리엄 마케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최초로 고안한 에이다 러브레이스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저명한 여성 인물들이 소개됐다.
이와 함께 한국인 여성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는데,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인 이태영 변호사.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가정폭력 상담 해결, 유교적 인습에 저항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14년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읍에서 태어난 이태영은 "아들 딸 가리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 끝까지 뒷바라지하겠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남자 형제들과 다름없이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평양 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던 중 만난 독립운동가 정일형과 결혼한 그는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법률 공부를 하라"는 남편의 격려를 받으며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서울법대 역사상 최초의 여자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첫 여성 서울대 법대 졸업생이자 최초의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회 통념과 남편인 정일형이 야당 인사라는 이유로 판사에 임용되지 못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변호사 개업을 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금혼령 폐지, 가족법 개정 운동 등을 주도하며 구습을 바꿔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성변호사라는 점 때문에 가정에서 억눌린 여성들이 그를 찾았고, 이에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를 열었다. 그는 당시 법률 지식이 부족한 여성과 어린이, 청소년들과의 상담을 통해 가정에서 당하는 불이익을 줄이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는 명백한 범죄임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별도의 가정법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1962년 청원운동을 시작, 이듬해 가정법원이 설립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호주제도가 국민 개개인의 평등권에 위배될 뿐 아니라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를 조장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꾸준하게 호주제 폐지 운동을 전개했다. 1998년 12월 17일, 이태영 변호사가 별세했고 6개월 뒤 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했다. 그해 말 유엔인권위원회가 폐지 권고를 결의했고, 2005년 3월, 이태영 변호사가 폐지운동을 시작하고 53년 만에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 역사의 독보적인 여성ㆍ인권 운동가였던 이태영 변호사는 여성운동과 더불어 민주화 운동을 병행했다. 1971년 신민당에 입당했고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구속된 이들의 무료 변론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3ㆍ1선언’에 참여했다가 77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80년 복권됐고, 그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서 DJ 곁에 서기도 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1만 5,000여 명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여 작업환경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이후 여성들의 국제적인 연대 운동이 활발해지며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남녀차별 철폐, 여성빈곤 문제 등 여성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태영 변호사는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을 노력했고,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한 발짝씩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독려했다. 평생을 호주제 폐지를 위해 노력했고, 결국 생전에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후 여성운동가들의 꾸준한 동참으로 폐지를 이끌어냈다. 적극적으로 여성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것. 그는 평생을 '여성의 목소리'를 위해 투쟁했다. 2017년, '여성의 목소리'를 위한 투쟁은 이곳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