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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사순절(四旬節)

입력
2017.03.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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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는 연중 큰 의미를 두는 절기가 몇 있다. 대중적 인기로 치면 성탄절이 최고지만, 의미로는 부활절도 그에 못지 않다.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待臨節), 예수의 세례를 축하하는 주현절(主顯節)도 있다. 대체로 축하와 축복의 의미를 담은 절기들이지만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사순절(四旬節)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 사순절은 글자 그대로 부활절(올해는 4월 16일) 전 일요일을 뺀 40일간을 말한다. 라틴어 콰드라게시마(Quadragesima)를 포함해 거기서 파생된 여러 유럽어는 사순절에 모두 ‘40’이라는 숫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왜 ‘40’일까. 성경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40년 방황했다든지,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40일 밤낮 걸어가 하느님을 만났다든지, 예수가 40일 광야에서 금식하고 기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성경의 전통에서 고난과 연관된 숫자다. 영어에서는 이와 달리 ‘렌트(Lent)’라고 쓴다. ‘봄’이라는 뜻의 게르만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 사순절은 회개와 참회 그리고 그를 위한 절제의 기간이다. 기도를 평소보다 많이 하고, 금식하며, 자선하도록 권한다. 낮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 이슬람교의 라마단과 비슷하다. 그러나 라마단처럼 엄격하지는 않다. 동서 교회를 막론하고 기독교는 이런 규율을 신자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사순절 메시지에서 루카복음에 등장하는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돈에 눈 멀어 죄를 범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라는 것이다.

▦ 세례명이 ‘라자로’인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최근 사순절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우리는 긴 역사의 많은 희생으로 일구어낸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유린되는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그 불의에 맞선 성숙한 시민의 함성은 정의와 평등을 향한 염원을 공명시켰습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쓴 천만이 넘는 불빛은 냉철하게 깨어있는 지킴이가 되어 새 역사를 향해 도약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탄핵 반대 집회에 대형 교회 교인들이 대거 동원됐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조용히 반성하고 절제하는 시간이어야 할 사순절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기를, 혹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길 빈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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