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2.24
클라라 프레이저(Clara Fraser, 1923~1998)는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로, 워싱턴주 시애틀을 중심으로 1960~80년대 급진주의 여성운동을 이끈 페미니스트이자 정당인이고, 조직활동가였다. 그는 초콜릿과 담배와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좋아한 것은 여성들의 일자리를 구해주고, 보다 나은 일자리를 얻게 하고, 그들이 직장에서 차별 받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러시아 이민자로 여성복노조 활동가였던 어머니와 라트비아 출신 아나키스트 트럭기사의 딸로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44년 UCLA를 졸업하고 극작 일을 하던 그는 트로츠키의 사회주의자노동자당(SWP)에 가입해 조직가로 활동했고, 23살이던 46년 시애틀 지부 창립 임무를 맡아 워싱턴주로 이주했다.
프레이저는 청년 시절부터 식당 웨이트리스, 상점 판매원, 버스 세차원, 전기공, 택시 기사, 식자공, 비서 등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일부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거였고 일부는 노동자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가담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위장취업’이었다. 프레이저는 중앙당과의 노선 갈등으로 65년 SWP 시애틀 지부를 해산하고 자유사회주의자당(FSP)을 설립했고, 67년 저 유명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그룹 ‘Radical Women’을 결성했다. 그는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 권익과 흑인ㆍ성소수자 인권에 힘을 쏟았다. 74년 시애틀 전기회사(SCL) 파업을 주동한 그는 이듬해 “경비 절감을 위한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해고됐지만, 성ㆍ이념 차별이라며 소송을 걸어 7년 만에 승리했다. 그와 같은 일들을 그와 그의 RW는 수많은 여성들을 위해 해냈다. 정치적 동지이자 남편인 리처드 프레이저(1913~1988)와 이혼한 뒤에는 워싱턴주 이혼 개정법안 개정운동을 벌였고, 주 최초의 낙태권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1988년 시애틀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청년 활동가들에게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책임을 일깨우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며 “자기 문제에만 빠져 사는 삶은 사회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낙담하지 말고, 조직하라(Don’t mourn. Organize)’는 건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시애틀 RW의 조직가 앤 슬레이트(Anne Slater)의 말처럼 “쉼 없이 밀고 가야 한다”는 교훈을 유산처럼 남긴 클라라 프레이저가 1998년 2월 24일 폐기종으로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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