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살아남자’ 머리 속에 이 생각밖에 없어요.”
2005년 세계적 권위의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아시아계로선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피아니스트 김선욱(29)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11년 전 신동으로 불렸고 이제는 ‘젊은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 김선욱은 21일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리즈 콩쿠르 이후 사라지지 않고 11년째 음악을 해올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느덧 서른에 접어든 그는 음악적인 고민을 많이 한다고 털어놨다. “더 이상 ‘신동’의 나이가 아니고, 아직 거장이 되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죠.” 30, 40대를 연주자로서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깊지만 그래서 그는 음악을 꾸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겠죠. 그 동안 사람들이 제 연주를 계속 찾아줘 50,60때까지 계속 연주할 수 있다면 축복일 거에요.”
김선욱은 내달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베토벤 소나타로 관객들을 만난다. 2009년 협주곡 전곡을 시작으로, 2012~2013년 소나타 전곡 연주, 2015년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 등 최근 10년 가까이 베토벤을 꾸준히 연구해 온 그는 다시 한 번 베토벤을 선택했다. 이번에 연주하는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은 이달 발매되는 그의 세 번째 앨범(독일 악첸투스 레이블)에 수록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김선욱은 “지난 10년 간 베토벤을 연주해 온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겹을 쌓았다고 생각한다”며 “연륜이 든다는 건 그 겹이 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연주자의 명반이 존재하는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를 다시 한 번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같은 문학작품이라도 번역자마다 어감이 조금씩 다르듯 베토벤도 연주자에 따라 다르다. 저만의 언어로 베토벤을 번역했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확신이 있어서 연주도 하고 음반도 내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연주들과 차별화에만 방점을 두지 않았다. 그는 “베토벤이 남긴 텍스트대로 연주하고 싶어 페달 사용법, 템포, 리듬 등을 많이 연구했다”고 했다.
피아노 연주 외 다른 곳에 한 눈 팔 생각은 없다면서도 지휘에는 꾸준한 관심을 두고 있다. 영국 본머스 심포니의 상주 음악가로 활동했던 2015년 앙코르 곡으로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중 ‘그랑 파 드 되’를 지휘하기도 했다. “지휘는 직접 연주가 아닌 연주자들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기 때문에 음악적 신뢰가 있고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즐겁게 하고 싶어요. 베토벤 교향곡 중 9번 '합창'을 제외한 모든 곡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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