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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사전] 3대 세습

입력
2017.02.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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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을 흔히 권력 세습이라고 하고, 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로 이어지는 것을 3대 세습이라고 한다. 북한 정권의 김정은과 남한 삼성 재벌의 이재용이 각각 3대 세습에 해당한다. 3대 세습에 의해서 최고 권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 똑같다.

지난주에 충격적 뉴스들이 연달아 전해졌다.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남이 살해되었다는 뉴스와 이병철의 손자이자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이 구속되었다는 뉴스다. 김정남 피살은 아마 당분간은 북한에서의 3대 세습 체제를 더 든든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이재용의 구속은 중장기적으로 보아서 삼성 재벌의 3대 세습 체제를 흔드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김정남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이복형이다. 김정남의 암살 사건은 지금 말레이시아 경찰이 수사하고 있고 몇몇 용의자들을 체포했다. 체포된 용의자들 중에는 북한 여권 소지자가 들어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정남 암살의 배후에 김정은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하는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김정남 암살의 효과로 봐서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다. 아무튼 권력이란 이렇듯 잔혹하고 패륜적인가라고 새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용이 구속된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이유는 삼성 그룹과 이재용이 최순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 때문이다. 뇌물을 준 까닭은 삼성의 3대 세습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이재용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위증 등 다섯 가지였다.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던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피해 간 법망을 손자이자 아들인 이재용은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도미니카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된 적이 있다. 2005년에 일본 일부 언론이 일본 경시청 공안부의 보고서를 인용해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남은 그 전에도 최소한 두 번씩이나 일본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2001년 일본 밀입국 당시의 김정남 옷차림에 대해 일부 언론은 ‘야쿠자’ 스타일이었다고 보도했다.

물론 2001년 일본 밀입국 때 공항에서 일본 공안 당국이 김정남을 체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옷차림 때문은 아니었다. 나중에 나온 뉴스에 의하면, 미국 CIA가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일본 공안 당국에 제공한 덕분이었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미 CIA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내 음모론적 상상에 의하면, 다분히 미 CIA는 알고도 방치했을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이번에 이재용과 함께 조사를 받았던 삼성의 한 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조사를 받는 중에 온갖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여기에 들어 왔는지… 나중에는 분노 같은 것도 치밀더라.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하고…” 아마 이재용의 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아마 ‘분노’가 제일 크지 않을까라고 상상하게 된다.

더불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선거인단 모집에서 ‘역선택’이 문제되고 있다. 역선택이란 박사모 등이 문재인을 떨어뜨리기 위해 선거인단에 참여해서 문재인이 아닌 다른 후보를 찍으려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의도적, 조직적으로 역선택을 독려한다면 대단히 비열한 일”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서 후보를 뽑으려는 제도의 성격상 역선택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며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딜레마는 이렇다. 북한 3대 세습을 피해서 이재용을 역선택할 수도 없고, 남한 3대 세습을 피해서 김정은을 역선택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북한 체제에서는 김정은이 구속되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남한 체제가 훨씬 더 나은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남한에서는 이재용을 비판하거나 해도 암살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흙수저인 나로서는 재벌이 아닌 할아버지, 아버지를 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설령 세습을 하더라도, 딸이나 처가 쪽 조카에게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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