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의 애니공감] 뉴트리아가 쓴 편지
제 이름은 '뉴트리아'입니다. 사람들이 ‘괴물 쥐’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웅담 쥐’라고 부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담즙에서 웅담 주성분인 우르데옥시콜산(UDCA)이 다량 함유됐다는 뉴스가 있었다지요. 한 수의대 연구팀에서 ‘뉴트리아 20마리의 담즙을 분석한 결과 곰보다 더 많은 UDCA 성분을 발견했습니다. 뉴트리아의 지방조직에는 기능성 화장품 원료로 쓰일 수 있는 팔미틴산 등 좋은 지방산이 검출됐다’는 발표 때문입니다.
사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목숨에는 포상금이 걸려있어요. “뉴트리아를 잡아오면 한 마리당 2만원을 지급한다”는 낙동강유역환경청의 발표로 수많은 제 동족이 잡혀 목숨을 잃었죠. 그런데, 다시 하루아침에 몸에 좋은 보신동물로 제 신세가 바뀌었습니다.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돼 ‘괴물 쥐’라 불려왔던 저의 정식 한국이름은 ‘늪너구리’입니다. ‘민물물개’라는 애칭도 있었어요. 뉴트리아(Nutria)는 원래 스페인어로 수달 또는 수달의 가죽을 뜻합니다. 제가 수달하고 생김새가 비슷하죠. 그 동안 우리는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서 생태계를 위협하는 유해동물로 낙인 찍혔습니다. 농사짓는 농부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유해동물이란 이유로 온갖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죠. 천적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많이 먹고 적응력이 좋아서 천적이 없다는 게 잘못인가요?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은 30여 년 전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모피로, 식용으로, 혹은 애완용으로 쓰겠다며 데려왔습니다. 각광받는 축산동물로 키운다고 말이죠. 처음 온 뉴트리아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습니다. 힘들게 적응했지요. 지금도 우리가 낙동강 이남지역에서만 살고 있는 건 추위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업이 실패하면서 우리들은 버려졌습니다.
우리 늪너구리를 ‘괴물쥐’로 만든 것은 사람들입니다. 감당이 안되니까, 내다버리고선 우리를 마치 원래부터 나쁜 동물인양 몰아갔죠. 우리를 죽이기 위해 현상금이 붙고, 전문 사냥꾼이 생기고… 골프채를 휘둘러 우리의 머리를 박살내고 곡괭이로 때려잡는 영상을 방송에서 보여줬죠.
몇 년 전 뉴스가 떠오릅니다. 2014년이었죠. ‘뉴트리아의 항문을 꿰맨 뒤에 다시 풀어주면 배설을 하지 못하다 공황 상태에 빠져서 자기들끼리 물어 죽이는 카니발리즘을 유도시켜 퇴치할 수 있다’는 서울대 면역학 박사의 의견이 실린 뉴스가 있었습니다.
유해동물이면 그런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죽여도 괜찮나요? 생태교란종이라고 해서 학대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정말 억울했습니다. “당신들이 데려와 놓고, 왜 당신들의 잘못과 책임은 뒤로 한 채 마치 우리가 처음부터 죽어 마땅한 동물이었던 것처럼 떠드는 거지?”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괴물 쥐’라는 이름에서 ‘웅담 쥐’가 되면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새로운 쓰임새가 발견됐으니 살 길이 생긴 거 아니냐구요? 아니요, 솔직히 더 무섭습니다. 웅담 쥐가 되면 저는 철장에 갇혀 쓸개를 내어주는 곰처럼 사육될 수 있겠죠. 그게 과연 더 나은 삶일까요?
제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곰, 밍크, 뱀, 개구리, 자라.. 그 동안 인간의 몸보신을 위해 희생된 야생동물의 뒤를 잇게 될까요.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까요. 저의 쓸개를 노리는 사냥꾼들의 총을 피하지 못해 수없이 잡혀서 몇 년 뒤 멸종위기종으로 동물원에서 살게 되려나요.
저를 사랑해 달라고 부탁 드리지는 않겠어요. 많은 분들이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압니다. 저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더라도 부디 작은 동정과 배려를 부탁 드립니다. 포획하셔서 목숨을 앗아가도 조금만 인도적으로 배려해주세요. 제 운명은 당신들께 달려있으니까요.
-낙동강 유역에서 늪너구리 올림
박정윤 수의사(올리브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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