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빈 변호사 지난해 개업
부동산 기록 허술해 분쟁 많지만
대개 소송 전 합의 ‘재판관’ 역할
“그래도 밥은 먹고살 만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울릉도가 ‘무변촌’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지난해 5월 사상 최초로 울릉도에 법률사무실을 낸 백승빈(35·사법연수원 45기) 변호사. 그는 울릉도 주민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하면 변호사의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섬이 되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피력했다.
백 변호사가 울릉도를 찾은 것은 지난해 4월. 연수원 시절 동기로부터 “주민들이 육지에 볼일 보러 나가면 2박 3일은 걸린다”고 한 말을 잊지 않고 법률사무소를 내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의 반대는 별로 없었지만, “대도시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나중에 가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지인들의 조언을 뒤로하고 울릉도행을 결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려놔야 할 것이 많아지고, 움직이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였다. 그는 “사건 사고가 많은 동네에만 파출소가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한 동네에 변호사가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주민들이 법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첫 의뢰인은 어선 가압류건으로 온 어촌계장이었다. 명의만 자신으로 돼 있는 마을 공동 재산인 어선이 개인채무 때문에 가압류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어촌계장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백 변호사를 찾았다고 한다. 자신 때문에 마을 주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백 변호사는 “개인적으로도 ‘실전’은 처음인지라 걱정도 됐지만 전후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꼼꼼하게 준비한 덕분으로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한숨 돌릴 수 있었다”며 “수척한 얼굴의 의뢰인이 기뻐하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울릉도에 변호사가 할 일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과거 원주민들이 토지나 건물 소유 기록을 남기는 일을 소홀히 한 바람에 이웃은 물론 친척끼리도 분쟁을 겪는 일이 많았다. 실제 의뢰 건수의 상당수가 이런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백 변호사는 “자고 일어나면 다시 봐야 할 이웃인데 소송을 남발하면 어디 살 수 있겠느냐”며 “상담을 하고 나면 대개 서로 원활하게 합의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종의 재판관 역할도 하는 셈이다.
“밥은 먹고산다”는 그는 요즘 울릉도 생활에 신이 난 듯했다. “섬이라 없는 것 투성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PC방이랑 편의점도 많고, 울릉보건의료원은 종합병원급이다. 유일하게 없던 변호사도 상주하게 됐으니 없는 게 없는 셈이다”며 웃었다.
때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은 그에게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물이 맑아 동네 바로 앞 바다에서 굴과 전복을 따고 문어를 잡아 즉석에서 탕을 끓여 먹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며 “알파고다, 인공지능이다 하는 세상에 로빈슨크루소처럼 자급자족 생활이 가능하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포항시에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뱃멀미를 한다”며 “툭하면 뱃길이 끊기는 것도 근심거리로, 정부가 지역균형발전과 영유권 강화 차원에서라도 교통편 개선에 지원을 늘려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울릉=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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