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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많이 낳아라? 여성 출산 등 떠미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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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많이 낳아라? 여성 출산 등 떠미는 사회

입력
2017.01.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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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임산부 배려 좌석엔

‘내일의 주인공 자리’ 적혀

저출산 사회적 우려 커지며

‘태아 기계’로 보는 인식 확산

“불복종하겠다” 되레 반감 키워

전국 산부인과 병원 대기실에 비치된 자궁경부암 백신 광고 팸플릿으로 여성을 출산 도구로 표현하고 있다. 정반석 기자
전국 산부인과 병원 대기실에 비치된 자궁경부암 백신 광고 팸플릿으로 여성을 출산 도구로 표현하고 있다. 정반석 기자

“너 그거 얌전히 맞는 게 좋을 거야”, “여자가 나중에 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자궁경부암 백신 광고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훈계하는 내용이다. “지금 우리 나이가 공짜로 놔주는 때라서 엄마가 절호의 찬스래”라는 대사로 보아 광고 속 여주인공은 지난해 6월부터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무료 접종 대상이 된 초등학교 6학년으로 추정된다. 해당 광고가 담긴 팸플릿은 최근 전국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광고를 접한 시민 반응은 비난 일색이다. 당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여자를 아이 낳는 도구로 여기냐’ ‘남성이 (자궁경부암 바이러스) 주 매개체인데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등 의견이 빗발쳤다. 직장인 임모(27ㆍ여)씨는 “여성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출산기계로 여기는 느낌이다”고 토로했다.

전문가 역시 광고 내용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자궁경부암이 산모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확인된 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남성도 함께 예방접종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몸을 은연중 출산도구로 여기는 모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하철에 붙여진 임산부 배려 캠페인에는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입니다’라는 글이, 핑크카펫(임산부 좌석) 아래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존중과 배려 같지만 정작 산모보다 태아만 중시하는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몸이 불편한 임산부를 위한 권리를 아이를 낳기 위한 의무처럼 표현하면서 여성이 배제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여성을 출산기계로 보는 인식은 공교롭게도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면서 강해지는 분위기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가임 여성 1명당 합계 출산율은 1.239명으로 인구 유지를 위한 적정수준(2.1명)보다 한참 낮고, 지난해 10월 신생아는 2000년 통계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가 지역별 가임 여성을 표시해 홈페이지에 올린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돌아온 건 여론의 뭇매였다. 관련 내용은 하루 만에 폐쇄했지만 당시 여성들의 분노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주지 않고서 출산을 강요하는 것에 불복종하겠다”는 출산거부 선언으로 이어졌다.

결국 출산은 의무가 아닌 선택,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과거 가족계획 때처럼 홍보와 계몽을 통해 사람들의 행태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정책실장은 “저출산시대에 여성을 도구화하는 것은 출산을 생물학적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며 “출산을 남녀가 함께 짊어질 사회적 과업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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