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우ㆍ존 리 옥시 전 대표 판결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ㆍ가족들 울분
“다른 나라에서 몰래 들여 와 쓴 거 아니에요.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아이에게 안심 문구 믿고 사서 쓴 죄 밖에 없어요. 이 억울함을 누가 풀어주나요?”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가 사망자 70명을 포함, 177명의 폐손상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신현우(69), 존 리(49) 전 대표에게 각각 징역 7년과 무죄를 선고한 순간 방청석에선 절규와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날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선고공판에서는 소비자 안전을 간과한 제조업체 책임자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ㆍ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지만, 피해자와 가족의 한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선고는 검찰이 구형한 형량(신 전 대표 징역 20년, 리 전 대표 징역 10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죄로 인정된 혐의에 대한 법정 최고형이었는데도 그랬다.
재판부가 1시간 30분 남짓 300쪽이 넘는 판결문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대법정에는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150석 방청석이 가득 차 문 밖까지 인파가 가득했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녹색 수의 차림의 신 전 대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을 하지 않았고 불구속 상태인 리 전 대표는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고 통역을 들었다. 재판부는 “주의 소홀로 많은 인명 피해를 일으킨 중대한 결과를 발생시켜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증거 불충분으로 리 전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50㎝ 길이의 산소통을 몸에 매달고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 임성준(14)군 옆에서 엄마 권미애(40)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권씨는 “태어나자마자 10년 넘게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긴 아들은 이제 폐 이식까지 고려해야 하는 단계”라며 “안전하다는 제품을 믿고 산 죄밖에 없는 우리는 평생을 고통에 사는데 주범들에겐 고작 7년, 무죄가 선고됐다”고 울먹였다. 임군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돌 직후 폐 손상이 와 기도협착과 장기손상, 폐동맥고혈압 등 심각한 합병증을 앓고 난 뒤 지금껏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방청석에서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지마.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네 양심은 알겠지”라는 절규도 터져 나왔다. 뱃속 태아와 28개월 딸을 가습기 살균제에 잃은 김아련(40)씨였다. 김씨는 법정을 빠져 나가는 리 전 대표를 향해 거듭 소리를 치다 방호원 손에 끌려 나왔다.
망연자실하게 뿔뿔이 법정을 나온 피해자와 가족들은 성에 안 차는 판결에 분노를 토로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아들을 잃을 뻔한 박기용(46)씨는 리 전 대표의 무죄 선고를 가리켜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습니까?”라고 외치며 눈물을 떨궜다. 마스크를 쓰고 나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여성 송영란씨는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내 폐를 엉망으로 만든 가해자들에게 무기징역을 줘도 용서 못할 판에 무죄라니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호소했다.
신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세퓨 오모(41) 전 대표에게는 징역 7년, 조모(52) 연구소장 등 옥시 관계자들에게는 징역 5~7년이 선고됐다. 노병용(66) 전 롯데마트 대표에게는 금고 4년이 선고됐다. 홈플러스 관계자들에게는 징역 5년, 금고 3~4년이 선고됐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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