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성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키 작은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웃에 있던 동막초등학교 야구부를 찾았다. “우리 아들, 야구 좀 시켜볼까 하는데요.” 야구부 코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키가 너무 작아요.” 그렇게 소년은 발걸음을 돌렸다.
연성초등 체육 교사이자 아이스하키팀 부장을 맡고 있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이스하키 한번 해볼래?” 유치원 때 스포츠단에서 스케이트를 타봤던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 방망이를 쥘 뻔 했던 소년은 그렇게 스틱을 잡고 한국 아이스하키를 이끌 미래가 됐다.
대명 킬러웨일즈의 루키 전정우(23)는 백지선 대표팀 감독이 주목하는 기대주다. 18세 이하, 20세 이하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지난해 세 차례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2016년 2월 덴마크 유로챌린지 대회를 시작으로 11월 헝가리 유로챌린지, 12월 폴란드 유로챌린지에서 빙판을 누볐다. 특히 폴란드 대회에서는 2골 2어시스트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전정우는 경기 조율 능력과 빠른 패스 타이밍이 일품이라는 평가다.
지난 3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만난 전정우는 “대표팀에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달랐다”며 “지난해 2월 대회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대표팀의 포스여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 태극마크를 달 때부터는 ‘여기에서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세 번째 대회에서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준 덕분에 조금이나마 실력을 보여줬다”고 대표팀 생활을 돌이켜봤다.
전정우는 대표팀에서 두 가지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더 세밀하고 부지런하게 경기를 준비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반성하고 형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또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으로 선진 하키를 추구하는 감독님의 전술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라는 것도 느꼈다”고 밝혔다.
전정우가 두각을 나타낸 대회는 폴란드 유로챌린지다. 그는 ‘젊은 피’ 위주로 꾸린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정우는 “감독님은 개인보다 팀 플레이를 중요시 하기 때문에 내 역할만 충실하면 된다”며 “체구가 작은 편이라 덩치 큰 유럽 선수들과 골대 앞에서 경합하다가 밀렸다. 그래도 내 가치를 보여줘야 하니까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바로 일어나 내 자리를 잡았고 운 좋게 내 앞으로 떨어진 퍽을 골로 넣었다. 경합 중에 넣은 골은 하키를 하면서 처음이었다. 이 때 ‘간절하면 운도 따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5일 사할린과의 경기를 통해 아시아리그 데뷔전을 치른 전정우의 새해 소망은 내달 19일 개막하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국가대표다. 대표팀은 내달 9일부터 경기 고양에서 열리는 유로챌린지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한 모의고사를 치른다. 유럽에서 열리던 친선 대회 유로챌린지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전정우는 백 감독의 신뢰를 받고 있는 만큼 합류 가능성이 높다. 실제 백 감독은 전정우에게 “젊은 공격수는 너 밖에 없다. 형들이 빠지면 네가 이끌어야 한다. 더 노력해라”고 당부했다.
전정우는 “아시안게임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며 “솔직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소속팀에서 잘해야 내가 갖고 있는 목표를 이룰 수 있으니까 대표팀 명단 발표 전까지 대명에서 주목 받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롤모델은 NHL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서 활약했던 파벨 다츠유크(39ㆍ러시아)다. 다츠유크는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올 시즌 러시아리그로 무대를 옮겨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정우는 “감독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패스를 하는 선수를 가장 싫어하는데 다츠유크가 그렇다”며 “하키 센스와 감각적인 패스를 하는 다츠유크의 스타일을 본 받아, 그 선수처럼 오래 기간 하키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인천에서 자란 전정우는 운명처럼 고향을 연고로 하는 대명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입단 전부터 집이 경기장 근처라 쉴 때 자주 찾았다”며 “그런데 관중이 적어 아쉬웠다. 재미있고 신나는 하키를 보여드릴 테니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신생 팀의 반란을 약속했다.
인천=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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