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주식매매 연간 3차례→12차례
과당매매 제한 분기 300%로 완화
매도 보고서 확대도 없던 일로
“고객우선 개혁 취지 살려야” 목소리도
지난달 초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한다”는 발언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증권업계에서도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지난 2013년 9월 고꾸라져가던 한화투자증권을 살리겠다며 구원투수로 등판한 그는 고정관념을 깨는 실험적인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업계의 치부를 거침없이 폭로해 ‘증권업계의 돈키호테’ ‘미스터 쓴소리’ 등으로 불렸다. 그가 자리에서 물러난 지 이제 1년 가량. 과연 그가 개혁을 명분으로 시도했던 크고 작은 실험들은 어떻게 됐을까.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작년 2월말 바통을 물려받은 여승주 사장은 주 전 사장이 도입했던 정책 대부분을 원상태로 되돌렸다.
주 전 사장은 매수 의견 일색인 증권사 보고서의 문제를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매도나 중립 의견을 담은 보고서 비중을 40% 이상으로 늘리도록 했지만, 그가 물러난 이후 애널리스트 자율에 맡겨졌다. “매도 리포트를 강제함으로써 오히려 독립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지만, 2015년 7.4%에 달하던 매도 리포트는 지난해 0%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중립 보고서 비중 역시 44.4%에서 33.3%로 낮아졌다.
고객으로부터 주식거래를 위탁받은 직원들이 수수료 수익을 더 많이 챙기려고 일삼는 과당매매 관행을 없애겠다며 고객계좌의 매매회전율을 연간 300%로 제한했던 조치 역시 분기 기준 300%로 완화됐다. 고객이 맡긴 주식을 연간 3차례만 매매할 수 있던 것을 12차례로 늘린 것이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연간 3번만 주식을 살고 팔 수 있도록 하면 오히려 영업직원의 자산관리 업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취지에서 2015년 10월 직원들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도입했던 ‘서비스선택제’는 결국 폐지됐다. 고객의 잦은 주식거래를 막기 위해 수수료 부과 기준을 거래금액에서 거래건수로 바꾼 것이 이 제도의 핵심.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소액 거래가 많은 고객들의 불만이 빗발쳤다는 게 한화투자증권의 설명이다. 예컨대 10만원씩 10차례를 거래할 때 건당 6,950원씩 6만9,500원의 수수료를 물리던 것을 지금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만5,750원만 받고 있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 간 ‘주진형식 개혁’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선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공감대 없는 일방통행 식 개혁의 한계라는 해석들을 내놓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 전 사장이 시도한 정책들 중 취지 자체는 나무랄 데 없고 특히 눈 여겨 볼만한 것도 많았다”며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이나 다른 증권사를 악으로 몰아세우는 방식 탓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 반성에서 출발한 그의 개혁의 취지까지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평가들도 상당하다. 그가 자사 홈페이지에 “고객에게 수수료를 더 받으려고 주식 매매를 유도했다”고 올렸던 통렬한 반성문이나 직원 관리 계좌 수익률이 ‘나홀로 투자자’보다 더 나쁘다고 공개한 자체 분석 결과 등은 업계 전반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사 보고서의 목표주가와 실제주가가 얼마나 다른지 명확한 숫자로 표시하고 애널리스트 연봉을 영업 기여도가 아닌 보고서 품질로 결정하도록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한 증권사만, 어느 한 CEO만 변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며 “업계 전반이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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